#.까미노에 홀로 나서다
* 이 글은 [ARTRAVEL] vol.34 Enough Alone 호에 기고한 ‘카미노 홀로 걸을까’ 원고의 일부입니다. 저작권은 그루벌미디어와 해당 작가에게 있습니다.
지난 겨울의 문턱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 나는 일주일 만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만 스무살에 떠난 첫 배낭여행 이후로 다시 유럽으로 향한 이유는 스페인의 순례길인 까미노를 걷기 위해서였다. ‘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까미노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약칭으로 널리 통용된다. 까미노의 유래가 가톨릭 성인 ‘야곱’을 기리는 것인 만큼 종교적인 이유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선택하는 이유는 결코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까미노의 존재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스스로 단절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내 경우에는 까미노에서 그저 원 없이 사진을 찍고, 오직 나만을 위한 글을 쓰고, 기회가 된다면 까미노에서 찍은 필름을 엮어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출발하기에 앞서 그동안 거의 사용한 적이 없는 로모키노 카메라를 점검하고 지인에게서 자동 필름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한 뒤에 35mm 필름을 잔뜩 샀다. 그리고 서울 도심에서 어설프게 등산화를 길들이는 동안 한 손에는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친해지는 법을 익히며 마침내 길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의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루트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프랑스길이었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길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한층 더 유명해졌다. 나는 여기에 고대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는 곳, 대서양과 맞닿은 절벽인 피스테라까지 총 900km에 달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수 백 킬로미터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한 달 여의 시간이 족히 필요한 만큼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는 없기에 까미노를 꿈꾸는 이라면 언제고 그 곳을 그려보며 부푼 기대와 설렘 속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막상 오랫동안 나지막이 간직해 온 꿈을 실행에 옮기면서도 어떤 변화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을 얻느냐 보다 얼마나 비워낼 수 있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여행이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한 편의 영화가 누군가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그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지침이 되기도 하듯이 여행을 꿈꾸고 바라던 나와 그것을 실제로 마친 내가 완전히 똑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기에. 까미노의 여정은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의 나이테를 깊게 새겨놓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 이어지는 글 : [Enough Alone]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2 #.길을 만나다
** 산티아고 사진에세이 [까미노, 같이 걸을까]에 대한 소식은 텀블벅 http://tumblbug.com/becamino
및 인스타그램 @becamino_book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