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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n 11. 2023

I am Groot!

자스민의 중고영화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누군가와 같이 개봉한 영화를 본다는 건 적당한 시기와 장소를 확인해 약속을 잡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만약 신중을 기하는 관객이라면 영화 취향에 더해 선호하는 좌석 위치까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데만큼은 상당히 까다로운 나에게 있어 극장에 가는 일이란,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듯이 독자적으로 행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한 일이 되었다. 한 달 전쯤 어린이날을 앞두고 예상보다 업무가 일찍 끝나자 즉흥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예매하고 곧장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던 퇴근길처럼.


미리 언급하자면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미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본 나를 배려해, 며칠 전 극장 나들이에 <범죄도시 3>를 선택한 상대방이 알고 보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 딴에는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세 번 보는 편이 극장을 나설 때에 보다 충만한 만족감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이유를 대놓고 떠들어나 보자고 마음먹었다.



<가오갤>은 극장판으로는 고작 3편이 전부인 단출한 시리즈이지만, 나는 2014년에 개봉한 첫 편 만으로도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게 되었다. 1편에서는 마블 유니버스의 최고 빌런으로 손꼽히는 ‘타노스’의 딸이자 냉철한 암살자인 ‘가모라’의 대사를 빌어, “우주 최고의 멍청이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가디언즈’라는 거창한 칭호와는 달리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고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이들에게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그리고 개성 강한 캐릭터 하나하나의 매력에 빠져듦과 동시에 -영화 홍보마케팅에서 으레 사용하는- ‘조화로운 하모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I am Groot”라는 3음절만을 반복해 말하던 그루투의 대사가 “We are Groot”라고 변주되는 순간의 감동이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부서진 싸움터에서 막강한 적과 대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엉뚱한 그루브를 타는 '스타로드' 만의 방식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관객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가 주인공 무리가 비로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거듭나는 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탁월함이야말로 <가오갤>의 헤어나올 수 없는 포인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보도스틸 |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VOL. 2’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가오갤> 2편에서는 가족의 범주로 테마를 확장한다. 주인공 ‘스타로드(퀼)’을 찾아, 온 우주를 헤맨 친부와의 재회를 넘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 가디언즈는 넘치는 유머 사이에 솟아난 애틋함으로 서로를 가족이라 칭하게 된다. 어린아이에게 잡아먹겠다는 애꿎은 농담을 일삼던 약탈자 무리의 대장(‘욘두’) 조차 숭고한 희생을 몸소 보여주며 참된 아버지의 상을 아로새긴다.


이는 (나를 포함한) <가오갤>의 매니아들 또한 스스로를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우주선에 탑승한 구성원 1쯤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였다. 여기에 1편의 엔딩에서 대활약을 예고한(?) 베이비 그루트의 깜찍함과 지난 세대의 명곡들로 선곡한 OST를 담아낸 믹스 테잎의 플레이 리스트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전설적인 요소로 남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보도스틸 |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번에 개봉한 3편은 사실상 시리즈를 갈무리 짓는 완결 편이자 어벤져스 이후로 주춤하는 마블의 기세를 살려낼 유일한 희망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받아왔다. 나 역시 가디언즈의 새로운 활약을 목격할 생각에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극장에 앉았다. 대장정의 막을 여는 장면은 ‘로켓’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 ‘로켓’의 눈망울로부터 가디언즈가 된 그의 얼굴로 오버랩이 되는 오프닝 시퀀스에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흐른다.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기타 사운드에 절규하듯 부르짖는 가사를 읊조리는 ‘로켓’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심장을 울린다.


<가오갤> 3에는 과거의 ‘로켓’과 같은 어린 존재들을 향한 연민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를 지켜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로써 이야기를 끌고 간다. 혼자서는 떨쳐내기 힘든 무력감과 열패감,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기적은 애정과 유대감에서 비롯된다. 결코 사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절대적인 수식. 뜨거운 감동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게 하는 장면들 속에서 완전체로 뭉친 가디언즈의 합동 액션을 원테이크로 구성한 장면 역시 놓쳐선 안될 하이라이트다. -원테이크의 절묘한 흐름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루트의 동작을 구심점으로 눈여겨 보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보도스틸 |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 시대를 풍미한 시리즈물은 적어도 시리즈를 지켜봐온 관객 개개인의 역사(관람 히스토리)를 대변한다.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에 열광하던 이들이 결국엔 마블을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이러한 까닭이 작용한 것이리라. 지난 10년간 독자적인 노선으로 우주를 항해해온 <가오갤>의 여정에 탑승한 팬들이 이제서야 그루트가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고 하는 것도 그저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벅찬 마음으로 <가오갤> 시리즈를 배웅하며 작별 인사를 전해본다. I am Groot!





해당 글은 뉴스레터 [디스턴스]에서 발행한 "자스민의 중고영화" 8번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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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의 중고영화 | 교복을 입고서 비디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절에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영화를 찍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영화 홍보마케터로 수년간 일하며 영화계의 쓴맛 단맛을 고루 섭취하고, 무럭무럭 자라 글 쓰는 마케터가 되었다. <자스민의 중고영화>에서는 스크린에 비친 장면들을 일상의 프레임으로 옮겨 그 간극(distance)을 헤아려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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