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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pr 14. 2023

이세계의 너를 기억할게

자스민의 중고영화 | 스즈메의 문단속

구름을 따라가는 여행. 다소 충동적으로 떠나온 후쿠오카 여행의 테마가 정해졌다. 휴가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극장에 들러 <스즈메의 문단속>을 봐두었으니, 여행하는 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밀린 디스턴스 원고를 써오겠노라고 선언하자 (디스턴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팀원이 던진 말이었다. 비 오는 서울을 떠나 비 오는 후쿠오카로 가다니, ‘구름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후쿠오카로 향하는 길에는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비치는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4월 초, 서울에는 봄비가 내렸다. 봄비를 몰고 오는 바람결에 벚꽃 잎들이 무수히 흩날렸다. 일본의 날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구름을 따라서 온 후쿠오카에는 꽃잎보다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벚꽃나무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벚꽃으로 물든 풍경을 내심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벚꽃을 보러 찾아다니지는 않아도 만개한 벚꽃나무의 행렬을 우연히 마주할 때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곤 하니까.


봄철을 수놓는 다른 꽃들처럼 화사한 빛깔도 아니고 진한 향기를 품지도 않았지만 벚꽃에는 유독 마음이 물렁해진다. 입춘이나 경칩이 지나고서도 벚꽃잎이 봉오리에 맺힐 때가 되어서야 ‘봄이 왔구나’ 실감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눈송이처럼 날리는 벚꽃비를 맞을 때면, 슬며시 다가왔다 떠나는 봄의 그림자를 좇는 마음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된다. 만개의 순간이 짧기에 더 소중한 거라고 위로하며, 마지막 잎새를 세듯이 시간의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다시금 체화하며.


<스즈메의 문단속> 보도스틸 | 제공: (주)쇼박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기상 관측만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가 그렇다. 크나큰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물리적인 피해를 복구하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다.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자국에서 흥행한 데에는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치유의 속성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작품을 들여다보기 전에 앞서 일본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긴 자연재해 사고를 떠올려 본다.


지난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도호쿠 지역 일대에서는 수만 명의 사상자와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거대 지진과 해일의 여파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이어져 또 다른 인명 피해를 낳았다. 일본인들은 당시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일본 동북부 지역의 여러 마을이 출입 금지 상태가 되어 폐허로 남았다. 무너진 건물을 재건하는 복구 작업은 십수 년 이상의 기한을 잡고 계속되고 있지만, 무너진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기한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따름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자연재해의 근원을 ‘미미즈’라는 거대한 존재로 형상화한다. 미미즈는 일본 열도 전역에 내재된 지진의 흐름이자 재앙을 일으켜 사람의 운명을 흔드는 악한 기운이다. 폐허가 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의 역할을 하던 구조물은 미미즈가 빠져나오는 통로가 되고, 대대로 이어져 온 ‘토지시’ 일족은 폐허의 문을 잠가 미미즈를 막는다.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제목과 같이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는 토지시 일족의 ‘소타’와 우연히 만나 토지시 역할에 동참하게 된다.


<스즈메의 문단속> 보도스틸 | 제공: (주)쇼박스


자연재해의 전조가 드러나는 형상과 이를 목격하고 막을 수 있는 사람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명확한 의도를 작품 전체에 힘주어 실어 담았다. 토속 신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일본의 전통적인 정서를 연상케 하는 신화적인 설정들은 감독 특유의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감을 입는다. 작은 제스처까지 놓치지 않은 인물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빛이 드리운 자연과 도시 풍광마저 살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미미즈에 맞서는 장면들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한 스펙터클한 요소들도 인상적인데,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지점은 문단속이라는 행위가 성립하는 조건이다.


문을 닫아 미미즈를 막은 다음, 폐허가 된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 지내던 사람들의 감정을 기억해 내는 것. 문을 나서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인사를 건네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가까운 시일 내에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온기 어린 목소리들을 되새김으로써 공간에 새겨진 기억을 끌어낸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들이기에 사라진 목소리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상실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달라진 일상에 베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문을 열고 나아갈 수 있도록 열쇠를 손에 쥐어주는 것 또한 기억이 지닌 힘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뜻하는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여는 작업은 감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너의 이름은>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내놓은 초기작에서부터 탁월한 장치로써 쓰여왔다. 우주선에 탑승한 소녀와 고향 친구인 소년 사이의 거리가 X 광년으로 멀어질수록 문자메시지의 전송 속도가 X 년만큼 길어지거나(<별의 목소리>), 극 전반을 이끄는 나레이션의 정체가 주인공의 반려묘라는 설정에서부터 두 인물(?)의 나레이션이 합치되는 엔딩까지(<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이처럼 다소 낭만적인 설정으로 삼았던 세계관이 ‘이세계’에 더 가까운 지점에 놓여있었다면, 최근 작품들에서 그려진 세계관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계’에 훨씬 더 가깝게 놓여있다. 이 같은 변화를 달가워하는 관객도 아쉬워하는 관객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이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에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감독의 세계관에 박수를 보낸다.


<스즈메의 문단속> 보도스틸 | 제공: (주)쇼박스



해당 글은 뉴스레터 [디스턴스]에서 발행한 "자스민의 중고영화" 7번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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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의 중고영화

교복을 입고서 비디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절에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영화를 찍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영화 홍보마케터로 수년간 일하며 영화계의 쓴맛 단맛을 고루 섭취하고, 무럭무럭 자라 글 쓰는 마케터가 되었다. <자스민의 중고영화>에서는 스크린에 비친 장면들을 일상의 프레임으로 옮겨 그 간극(distance)을 헤아려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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