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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l 28. 2020

S#.2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BIFF의 추억

 아침에 눈을 뜨면서 살결에 와닿는 신선한 공기를 느낄 때, 가벼운 솜이불을 꺼내야지 생각한다. 출근길에 들린 카페에서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라떼를 주문한다. 푸릇푸릇한 나뭇잎도 햇살을 머금고 노랗게 반짝이는 아침. 기분 좋아지는 바람이 분다.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면 어딘지 익숙한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게 무슨 기분이더라? 햇살 좋은 테라스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기분. 아니면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거닐고 싶어진다. 잠시 추억 속을 더듬어 내려가다 보면 익숙한 감각의 정체를 스무살 언저리에서 마주한다. 맞아! 이건 부산영화제의 감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무살에 첫 방문한 부산영화제에서 아로새겨진 것이다.


 영화과에 갓 입성한 새내기에게 있어 부산영화제는 입학 때부터 잊을만 하면 듣곤 했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였다. 진정한 영화학도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당시엔 그랬다)

 10월 첫째주 주말 즈음, 부산의 날씨는 반팔을 입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얇은 니트나 야상을 걸치기에도 적당했다. 햇살이 부서지는 해운대 바다를 마주하고 모래사장에는 영화제 라운지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일부 영화 관계자들 사이로 전국의 영화학도들에게 선착순으로 발급되는 공짜 ID카드를 목에 걸고 활보하는 동지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 상영작을 보기 위해서는 해운대나 남포동의 오래된 극장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 다녔다. 상영 시간을 기다리면서 재래시장에서 돼지국밥이나 밀면으로 요기하고, 오뎅떡이라는 신문물에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요트 선착장의 야외 상영장에서는 그다지 재밌지도 않은 장면에도 깔깔깔 웃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둥둥 울릴 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밤에는 해운대 바닷가에서 맥주 한 캔을 들고 아무데나 앉아서 영화 얘기로 꽃을 피우며 천 원짜리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반드시 누군가 어딘가에서 폭죽을 터뜨리곤 했으니까) 밤이 더욱 깊어가면 꼼장어 가게에 모인 선배들의 술자리에 합석하거나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밤샘 대열에 합류해 티켓팅을 했다. 어느 쪽이든 잠을 제대로 잘리는 만무하니 정작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는 눈을 붙이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돼지국밥으로 해장을 하며 부산의 바이브에 적응했다 싶을 때면 길거리에서 유명 감독과 배우의 일상적인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여기가 부산이구나!’ 되새기면서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과 스쳐 지나면서 속으로는 영화인에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에 뿌듯함이 한껏 차 올랐다.


 ‘라떼는 말이야’ 얘기는 이쯤하고 현실로 돌아오면, 정작 영화계에 몸담는 동안에 일로써 찾은 부산영화제는 더이상 낭만의 대상이 아니었다. 주로 영화의 전당이나 벡스코라는 허울 좋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즈니스의 현장은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월이 다가올 때마다 스무살 기억 속에 박제된 부산영화제의 강렬한 향수에 사로잡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이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짙어져만 가고 있다.


* 수요일 글쓰기 모임 16주차, 글감 :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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