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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05. 2020

S#.1 1월 1일에는 극장에 가요

Sorry We Missed You

지난 12월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주제에 맞는 글은 여기에 옮겨보려 한다.
표지 사진은 라이카 C2zoom으로  촬영하고 필름스캔함. @paris, 2017


 일전에 ‘무계획의 삶을 계획’한다고 밝힌 것과 같이, 신년계획이라든지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세우지 않는다. 다만, 1월 1일에는 애써 극장을 찾아가서 의미있는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나만의 작은 의식은 지지난 겨울에 재개봉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2018년 카운트다운 직후에 심야영화로 택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재관람을 하기 전에는 엔딩을 장식한 ‘LIFE’ 매거진의 표지 사진만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다시 본 영화에서는 LIFE 사의 모토*가 마음에 와 닿았다.
 2019년에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갈 수 있는 극장 중에 하나인 건대의 예술영화관(KU시네마)에서 <로마>를 봤다. 상영관이 매우 적어서, 새해 첫날에 굳이 그 영화를 보러 온 다양한 군상이 작은 극장 안에 옹기종기 들어찼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조용히 눈물을 추스리며 훌쩍이는 소리가 상영관을 메웠다. 나도 정말 많이 울었다. 불이 꺼진 극장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그러안고 남은 일년을 버텨내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올해 첫날에는 늦으막히 일어나 <미안해요, 리키>를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매일 회사에 가는 루트로, 딱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봉은사역에서 코엑스  메가박스로 곧장 이어지는 길은 극장을 갈 때 선호하는 루트 중 하나다. 더욱이 항상 붐비는 극장 로비에 비해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스크린 A, B 상영관은 나만의 힐링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되고나서야 원제가 <Sorry We Missed You>라는 점을 알게 됐다.  제목의 의미는 영국의 택배 기사들이 부재 중인 수신인에게 남기는 쪽지의 문구에서 기인한다. 녹록치 않은 삶을 견뎌내는 주인공 ‘리키’와 그의 가족들의 마음이 슬프게 와닿았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스크린에 펼쳐진 이야기에 몰입되어 있던 관객을 서서히 현실로 되돌려놓는 시간. 영화가 끝남으로써 삶은 다시 시작된다.
 극장 하나 없는 오지에서 새해를 맞지 않는 한, 나는 1월 1일마다 극장에 찾아가는 소소한 행복을 계속해서 누릴 예정이다.

*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며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삶(life)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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