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함께하는 삶, 그 감각을 기록하다
어릴 때부터 예술은 나를 길러낸 언어였다.
아버지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어머니는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집 안 곳곳에는 그림과 책이 있었고, 부모님은 내 손을 잡고 영화관과 전시장, 공연장으로 이끌어주었다. 다양한 뮤지컬과 연극, 발레 공연 등을 보며 무대의 매력을 배웠고, 영화관의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낯선 세상을 만났다. 예술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익숙하게 자리 잡은 평범한 삶의 일부였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감수성이 깊은 어른이 되었다.
대학 시절,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를 보는 루틴이
생겼고, 교양 수업은 ‘영화학개론‘ ’ 현대미술의 이해‘ ’ 연극연출의 이해‘ 와 같은 언제나 예술과 관련된 것들만 골라 들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나에기 가장 설렘을 주던 순간은 보석 같은 오래된 고전 영화를 만날 때, 그리고 도서관에서 아직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을 가장 먼저 읽는 일이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 안의 문장들이 가장 처음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그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 일본문학에 빠지기도 했고 좋아했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읽으며 따뜻한 시선을 배웠고, 그렇게 도서관은 자연스럽게 내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재미없는
범생이에게 예술과 문화는 천천히, 깊이 스며들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의 콘텐츠 디렉터로서 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하고, 예술과 문화를 해석하는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길러진 감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리는 매일 문화를 마주한다.
책을 펼치고, 영화를 감상하고, 연극 무대 앞에 앉아 배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시장에서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고, 어떤 이야기는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때로는 무심코 지나친 장면이 어느 날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기획자의 시선으로 스토리를 들여다보고, 연출의 의도를 탐색하며, 창작자의 고민이 깃든 흔적을 발견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문화가 주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영감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책 속의 한 문장, 영화의 한 장면, 연극 무대 위의 대사 하나, 전시장에서 마주친 빛과 색감이 내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싶다.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더 깊이 바라보고, 더 섬세하게 느끼며, 더 넓게 사유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의도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나만의 해석을 더해가는 과정. 스토리는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니까.
한 편의 이야기 속에서, 한 컷의 장면 속에서, 하나의 색감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영감을 찾아 나가기를.
글을 꾸준히 쓰고, 또 머릿속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인데 감사하게도 나의 글을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 공간에서 함께 문화를 읽고, 감상을 나누고, 서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아주 조용한 속도로, 그러나 분명한 깊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