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
어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도 이미 그 안에 완전한 의미를 품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나에겐 그렇다. 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을 접했을 때 ‘완전히 속았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말은 제주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따스한 위로의 표현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자 제목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깊고 진한 위로처럼 느껴지는 듯 하다.
이 작품은 제주의 푸르름과 거친 파도 위에 인간의 삶과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배경은 1960년 대지만,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풍경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은 모녀 관계의 복잡한 내면을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 주인공 애순이 딸에게 찾아온 유학의 기회를 돈이 없어 좌절하며 교수의 도움을 거절한 후, 어머니와 나눈 통화가 그랬다. 자신도 모르게 엄마에게 상처를 준 후 흐르는 내레이션은, 보는 내내 제 마음 깊숙한 곳을 아프게 파고들어 대사에 공감이 갔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이 단순하지만 깊은 고백은,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심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낯설어진다는 역설은 삶이라는 아이러니를 가장 아프게 건드린다.
드라마 속 애순이 어린 시절에 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한 이 동시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듯 하다.
“점복(전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이 짧은 구절은 제주에서 살아가던 애순의 절실한 하루를 그리면서, 우리의 삶 또한 매일 하루를 팔아서 내일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고.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드라마의 제목 ‘폭싹 속았수다’가 품고 있는 진정한 위로는, 결국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것을 묵묵히 견뎌내며 서로에게 “수고하셨다”라고 말하는 데 있다. 작품을 보면서,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래선지 난 지금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의 무게를 견디느라 폭싹 속았수다.
당신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