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TV+하나만 추천한다면? Lessons in Chemistry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었다 –
스트리밍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다.
매일같이 새로운 시리즈가 쏟아지고, 그만큼 금방 잊히는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 속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애플 시리즈를 고집하게 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애플은 적게 만들고, 대신 깊게 여운을 남긴다.
애플 TV+의 시리즈는 대체로 조용하다.
감정은 절제돼 있고, 대사는 정교하며, 시선은 섬세하다. 드라마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 같고, 미국 시리즈지만 과도하게 미국 스럽지 않다. 누가 봐도 넷플릭스네? 하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보다 여운이 더 오래 남고, 인물보다 분위기가 기억된다. 그래서 나는 이 플랫폼을 좋아한다. 빠르게 소비되기보다 천천히 침잠하게 만드는 이 감각이, 지금의 나와 더 잘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작품을 추천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Lessons in Chemistry를 말할 것이다. 단순히 좋아서가 아니라, 이 작품은 시대를 거슬러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낸 한 여성에 대한 가장 고요하고 단단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시작은 한 권의 소설이었다.
보니 가머스(Bonnie Garmus)가 64세에 발표한 작품 ‘Lessons in Chemistry‘이다.
출간 직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여성의 커리어, 자립, 고정관념에 대한 반기를 유머와 지성으로 풀어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을 쓴 작가 역시 과학이나 방송계와 전혀 무관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카피라이터이자 싱글맘이었던 보니 가머스는 여성의 ‘이력서가 아닌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는 삶의 수많은 틈에서 겪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엘리자베스 조트라는 한 인물로 응축시켰고, 그 인물은 단숨에 시대와 언어를 넘어 스크린까지 건너왔다.
엘리자베스 조트.
그녀는 1960년대 미국에서 과학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과학자였던 여자다. 다만 세상은 그녀를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다. 연구실에선 늘 조수였고, 실험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남성 중심의 구조 속에서 그녀가 받을 수 있는 건 ‘기회’가 아니라 ‘허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증명하려 했다. 분노보다는 실험으로, 눈물보다는 측정으로. 그러나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자리 앞에서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곳은 과학계가 아니었다. 요리 프로그램이라는 뜻밖의 무대에서였다. 주부들을 위한 방송, 시청률만을 위해 기획된 쇼.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 공간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리를 화학의 언어로 바꾸고, 부엌을 강단처럼 사용하며, 주방을 과학의 실험실로 전환시켰다.
그녀는 “요리는 화학입니다”라고 말한다. 계량은 실험이고, 열은 반응이며, 맛은 과학적인 결과다. 그녀는 맛있는 요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여성들에게 사고하고 말할 권리를 전해준 것이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마세요”라고, 그토록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한 것이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며 자꾸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도 커리어를 가진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증명과 설득의 연속이다. 기획서 한 장에도, 회의실의 침묵 속에도, 누군가는 나의 ‘자격’이 아니라 ‘태도’를 평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 말이 오래 남는다. “나는 남자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나는 나로서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얼마나 많은 순간,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가.
이 시리즈가 특별한 건 단지 여성의 성공기를 그려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여정을 애플은 애플답게 들려준다. 과장도 설명도 없이, 고요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파친코>의 선자, <테헤란>의 타마르, <리브 시니어스>의 글렌. 애플은 언제나 적은 말로 많은 것을 전하는 방식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그리고 의 엘리자베스 조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무른 인물이다. 그녀는 세상을 바꾸려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으로 살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게 세상을 바꿨다.
그녀는 불을 피웠다.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