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을 밝힌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봄의 전령 새싹처럼 하나둘씩 머리를 내밀 때,
확진자들의 동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한 적이 있다. 혹시, 개인의 권리가 과도하게 침해받는 건 아닐까 하는. 물론, 그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하루 일과를 자분자분 곱씹어 보기 전까지만 유효했을 뿐.
오전 7시 반, 아내와 아들에게 출근한다고 보고한다.
점심엔 어디에서, 뭘 먹었는지 아내에게 보고한다.
일과시간엔 누구를 만났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보고한다.
오후 6시 이후, 아내와 아들에게 퇴근한다고 보고한다.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면서 무조건 맛있다고 보고한다.
아들 목욕시키고, 내 방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쓴다고 보고한다.
글을 쓰고, 기타 잡일을 마치고 아내에게 보고한다.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잔다고 아내에게 보고한다.
내일도 이 반복된, 이동경로 보고는 계속된다.
그리고 불시에
카드 사용내역과 카톡 채팅 내역을 요구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 놈의 코로나 19 사태는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내 동선을 밝히는 건 그 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