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엔 끝이 없다.

뜻밖의 일이나 무서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다.

by 위트코치 이용만

옷깃에 스치면 인연인데,

내손에 스치면 악연이다.


내손에 닿으면 잘 작동하던 전자제품이 갑자기 고장이 나곤 했다. 요리라도 좀 해볼라치면 그릇이 깨지거나 다된 음식을 흘리거나 하는 등 타고난 마이너스의 손이다. 전문용어로 '똥손'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울 엄마가 그러는데, 난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은, 결국 아내에게로 향했다. 아내를 돕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역시,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데, 결혼 후 7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울 부모님의 가르침과 결혼이라는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간의 혼란 속에서 나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가르침을.

그렇게 29년간의 배움이 29초 만에 주방세제 거품과 함께 싱크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참기 힘든 경우들도 있다.

물에 안 담가서 말라 붙은 밥알과 음식물들.

그릇 마트료시카(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들마냥 서로 꼭 껴안고 안 떨어지는 그릇들)

기름 범벅인 거 설거지 모아놓은 물에 담가놓기(모든 그릇이 함께 기름 범벅이 된다.)

이를 흔히 <설거지 3대 죄악>이라고 한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나서는 바로 물에 담가놓고, 기름기가 있는 접시는 키친타월이나 쓰나 남은 휴지로 닦아내주면 설거지할 때 훨씬 수월하다. 그리고 그릇들 간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되기 전에 미리미리 분리시켜 둔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다.




최근엔 내가 아들 목욕을 시킨다. 평일에는 설거지를 안 한다. 물론 주말에는 해야 한다. 여하튼 저녁을 먹고, 온몸으로 저녁을 먹는 아들을 데리고 씻는다. 그 사이에 아내가 설거지를 한다. 결혼 전, 아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고 했기에 고무장갑을 항상 비치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다가 너무 목이 말라서, 잠결에 부엌으로 향했다. 정수기 근처로 가는 도중에 기절할 뻔했다. 하얀 손이 싱크대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행히 고무장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안쪽으로 물이 들어간 고무장갑을 말리기 위해 아내가 뒤집에서 걸어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봐도 섬뜩하다.

엄마손이 유난히 창백하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정수기 앞에 서서, 미온수를 마시며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고 방광에도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2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정신줄과 소변줄은 놓치지 않았다. 이번 건 정말이지 소름 끼쳤다. 한쪽 팔에 이어 이번엔 토막시체라니.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인형에 물이 많이 들어가서 물을 빼려고 머리, 팔, 다리를 분리해 건조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R.I.P(rest in peace) 하마터면 내가 평화롭게 잠들뻔했다.

자, 상상해보라.

잠결에 물 마시러 가는 도중에 싱크대에 팔 한쪽이 걸려있고, 겨우 진정하고 돌아서려는데 화장실 입구에 토막시체가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다. 섬뜩하지 않은가. 이건 뭐, 지어내기도 힘들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난 28개월 아들 역시 토막 난 아기 인형을 보고 대성통곡을 한다.

급하게 조립을 해주고 달래줬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은 듯 까까를 찾는다. 과자를 두 손에 가득 쥐어주고 요플레도 친절하게 까서 줬다. 여유를 즐기며 커피 한잔을 마시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들은 지극한 효심으로 내게 남은 커피를 가져다주려고 했나 보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오다가 바닥에 그대로 쏟아부었다.

왜, 울 엄마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