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키 Dec 14. 2020

통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까워질 수 없는 그 거리

친구들과의 수다가 한참 무르익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6시까지 와"라는 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일어서며 "나 가야 돼, 안녕!" 이라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성인이라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단지 마시는 액체가 물에서 술로 바뀌었을 뿐,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핸드폰을 툭툭 치면서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야 나 가야될 것 같아." 


20살이 넘은 지금, 나에게는 여전히 통금이 있다. 물론 어렸을 때의 오후 6시는 아니지만 2차전이 시작될 즈음인 밤 11시 50분이다. (11시에 집에 가려고 홍대역 9번 출구를 내려간 사람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렸을 때야 엄빠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아이'니까 순순히 잘 따랐지만 민증이 효력을 발휘하는 20살부터는 그게 참 이해가 안됐다. 나는 이제 성인인데, 왜 누군가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님이다.


친구들과 있을 때 울리는 핸드폰을 째려보며 속으로는 자꾸만 나를 간섭하는 부모님을 미워하곤 했다. 오죽하면, 10대에도 무사히 지나갔던 사춘기가 이제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모든 것은 제 나이에 겪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쌓인 어느 날,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금요일 저녁 밖에서 먹을까? "


아빠는 분명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안고 나왔을 거다. 아니, 전에 없던 요청을 한 나를 보고 오히려 걱정을 더 많이 하셨을 거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나는 통금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한 부모님의 관심 또는 간섭이 이제는 부담스럽고 나를 몹시 답답하게 하는 것 같다고. 아빠 말이라면 고분고분 듣기만 한 나였기에 아빠도 적잖이 당황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빠에게 그런 의견을 내비친 적이 없던 나였기에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빠의 첫 대답은 예상 외였다. 나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셨지만 통금을 없애는 건 아빠로서는 하기 어려운 부탁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이 늘 걱정되고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답변의 이유였다. 그리로 그건 부모와 자식 간의 절대 좁혀질 수 없는 평행선이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이 자리가 소용이 없는 자리가 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을 것임을 확인사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통금 문제로 비슷하게 가끔 부딪히기도 하고 회사 일로 힘들 땐 누구보다 가장 공감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아빠를 보며 비로소 그 말을 이해했다. '그게 평행선이구나.'라고.


 아무리 애정과 친밀함을 주고 받는 사이라도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절대 한발짝도 물러날 수 없는 자신만의 입장이 있다. 그 입장이 서로에게 이해가 된다면 평행선은 생기지 않지만, 한쪽이라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 사이에는 평행선이 생긴다.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평행선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를 이해해준다면 그 관계는 싸우고 사랑하고를 반복하며 돈독해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평행선은 더 벌어져만 갈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