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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Nov 12. 2020

정보공개청구 행정심판, 2년의 분투기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

정보공개청구 입문 강의를 종종 한다. 정보공개청구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해보지 않은 것은 언제나 두려우니까. 보통의 입문 강의는 어디에 청구할 수 있고, 며칠 걸리고, 이의신청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까지다. 공공기관이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비공개 또는 부분공개를 하거나, 20일이 넘도록 정보공개 결정을 하지 않을 때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만 청구해보면 다들 알게 된다. '어렵지 않구나.'

그런데 이의신청을 해도 기관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한다면?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다. 행정심판, 행정소송은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하는 거지?

정보공개청구는 수백여 건 해보고도, 그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행정심판의 길을 가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시간의 기록이다.


2018년 12월 7일 정보공개청구,

2019년 1월 7일 비공개 처분 결정

시작은 2018년 11월 26일 첫 보도한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제반 문제점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로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보도했다. 1차보도 10개 꼭지 중 <식약처의 '업체 꼬리표' 걱정... 정보 감추기 급급> 기사를 쓰면서 일반에 공개되는 의료기기 정보를 확인했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취재진은 쉽게 조회 가능한 데이터들을 우리는 국회를 통해야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식약처는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아예 공개하지 않고 있었고, 리콜 정보는 딱 석 달만 공개했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회수 기록이 '꼬리표'로 계속 따라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1차보도를 통해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과 규제 감독의 허술함을 지적하면서도, 식약처가 의지만 있으면 당장 고칠 수 있는 건 정보비공개 문제라고 판단했다. 국회를 통해 입수했던 자료들을 2차 보도에 앞서 2018년 12월 7일 일괄 정보공개청구했다. 이미 뉴스타파는 해당 자료를 검증해 '필수 정보 누락', '지연 보고', '허위 보고' 등의 문제를 발견했고 보도한 뒤였다.

이후 1차례의 기간연장이 있었고, 청구일로부터 1달만인  2019년 1월 7일 비공개 처분을 통지받았다. 비공개 사유는 "이 사건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 신체 등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개인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다."였다. 밝혀두자면 청구 당시,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은 모두 익명화해 공개해달라고 분명히 적었다. 기관은 청구인의 연락을 열심히 피했고, 기간은 이미 한 달이 흘렀기에 이의신청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다.

정보공개포털에 기록된 4건의 정보공개청구


2019년 3월 28일 행정심판 청구

행정심판은 온라인행정심판에서 회원가입 후 인터넷으로 진행할 수 있다. 딱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절차의 끝이었다.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는 팝업이 뜨고, 행정심판 청구서 양식이 뜨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 어떻게 써야 하고, 증거서류는 어떤 양식으로 첨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행정심판 청구서 양식

'다른 사례 보기'가 제공되길래 일단 모두 꼼꼼히 살펴보고 따라 해봤다. 청구 취지의 '취소', '이행', '무효' 중 무얼 골라야 하는지 청구이유를 다 쓰도록 몰랐지만, 어찌 초안은 완성했다. 증거서류는 예시에 포함돼 있지 않아 이 때는 첨부하지 않았다. 법률용어나 양식에 익숙하지 않아 일단 기사체로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위원회에 해당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청구 전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자문을 구했고, "행정심판을 청구하면 피청구인 쪽에서 답변서를 내니 그 내용을 보고 추가로 반박하거나 주장하고 일단 청구서를 접수하자"는 의견을 받아 바로 접수했다. 2019년 3월 28일이었다.


2019년 4월 17일 피청구인 답변서 송달,

2019년 5월 20일 보충서면 제출

답변서를 받고서야 '아 공무원들의 글쓰기는 이런 거구나' 깨달음이 왔다. 어떻게 쓰면 되는 건지 감을 잡았다. 갑제N호증 명칭으로 달린 피청구인의 무수한 증거서류를 보고 똑같이 을제N호증이라고 달아 증거서류를 잔뜩 준비했다.

사실 뉴스타파의 최초 보도 이후 식약처 정책이 많이 바뀌었다. 식약처는 그동안 의료기기 리콜(회수) 기록을 3개월만 공개했지만, 보도 이후 3개월 시한부 공개 기준을 폐기했다. 인체이식형 의료기기를 몸에 심은 환자들에게 발생한 이상사례 보고 내역을 담은 '이상사례 보고서'의 경우, 보도 시점으로부터 2달이 채 되지 않아 식약처 홈페이지에 '의료기기 이상사례 정보' 메뉴를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했다. 부작용 사례가 보고된 의료기기의 실제 제품명, 업체명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공공 DB가 처음으로 구축된 것이다.

식약처는 이런 변화를 답변서에 담았고, '이상사례 공개 시스템을 꾸준히 정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사전에 입수했던 지난 5년간의 이상사례 보고 내용은 DB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 식약처 홈페이지에서 이미 삭제된 수년 치 리콜 기록 역시 복원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내용들을 자세하게 담아 공무원의 글쓰기 양식으로 보충서면을 작성했다. 피청구인의 답변서를 꼼꼼히 반박하는 것을 목표로 2019년 5월 20일 보충서면을 제출했다.


2019년 5월 20일 재결기간 연장,

2019년 6월 19일 재연장,

2019년 7월 양측 2차 보충서면 제출

중앙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두 번의 재결기간 연장 통보를 받았다. 겨울,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는 때였다. 신속한 처리가 안 된다면 심도 있는 검토와 신중한 재결이라도 기대하고자 피청구인과 나는 보충서면을 또 제출했다. 2019년 7월 3일 피청구인의 2차 보충서면을 받았고 2019년 7월 19일 나도 2차 보충서면을 제출했다. 주고받는 공방에 위원회가 확인할 자료들은 점점 더 쌓였다.


2019년 8월 14일 주소등변경신고서 제출

처리기간이 길어지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행정심판을 최초 청구했던 1월, 사무실 주소로 주소정보를 등록해뒀는데 8월 14일 사무실을 이전하게 됐다. 이사 당일에 주소등변경신고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했지만, 7월 3일에 서면으로 제출했다던 피청구인의 서류가 우편등기로 예고없이 8월 마지막주에 이전 주소로 날아왔다. 해당 등기는 꼭 본인이 받아야한다길래 업무 중에 급히 다녀왔다. 정작 받아보니 이미 온라인으로 등록돼 확인한 자료였다. 등기가 온다는데 그저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발송이라니 무리해서라도 받아볼 수밖에. 처음 하는 행정심판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몸이 고생이다.


2020년 3월 5일 심리기일 통보

이후에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고 해를 넘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받은 우편등기를 마지막으로 연락 한번 없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3월 초 문자를 받았다. "귀하의 청구건이 2020-03-17에 심리예정입니다. (재결서 송달은 재결 후 2주가량 소요)"

당시 해외출장 중이라 매우 당황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다음 단계, 심리기일을 드디어 통보받았는데 뭘 해야 하는 건가. 한참 생각했지만 사실 할 게 없었다. 심리기일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11일 귀국한 뒤 2주는 외부와 접촉을 차단했기에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020년 3월 18일 "귀하의 심판청구 건이 인용되었습니다."

귀국 후 코로나 신경 쓰느라 잊어버렸다. 18일 아침 재택근무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띠링X4 알림음이 울렸다. "귀하의 심판청구 건이 인용되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재결서 송달에는 2주가량이 소요되고, 이후 효력이 생긴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총 4건의 심판을 진행 중이었는데 2건에 대해서 인용, 2건에 대해서 기각을 받았다. 문자로 봐서는 어떤 건이 기각이고 어떤 건이 인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급히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온라인행정심판에 접속해 내용을 확인했다. 행정심판 청구일로부터 만 1년을 기다려 얻은 두 건의 인용 소식은 합격 문자처럼 설렜다.


2020년 3월 31일 재결서 송달

18일로부터 딱 2주가 되는 31일. 이번 행정심판 고행길의 마지막 기다림이겠거니 생각했다. 온라인 재결서를 확인했다. 재결서 수령 다음 날부터 재결의 효력이 발생한다기에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자 했다.

1년 3일을 기다려 받은 재결서


2020년 4월 16일 성실 이행 합의

안타깝게도 나의 행정심판기는 아직 끝나지 못했다. 두 건의 부분인용 결정은 피청구인에게 "사건 처분 과정에서 제3자에 대한 통지절차를 모두 거친 후 이 사건 정보에 대한 공개여부를 다시 결정통보하라"는 것인데 제3자 통지절차에 대한 기한 규정이 없다. 식약처가 언제까지 통지해야하고, 어떻게 통지할지 강제할 방법이 없고 그 절차가 종료돼야만 정보공개에 대한 결정이 다시 이뤄지는 상황이다. 

행정심판법 제49조, 50조에 따라 간접강제 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정해진 기한이 없어서 어느 시점에 이를 신청할 수 있는지 애매했다. 행정심판위원회에 문의했더니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니 피청구인과 협의 하에 잘 진행해보라는 답변을 얻었다. 1년 넘게 싸우고 있는 피청구인과 합의라니.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이틀 뒤 콜백이 왔다. 제3자가 많아 처리에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기한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예상한 답변을 받았다.

그나마 1년 이상 지속한 오랜 싸움에 모두 지쳤으니 적어도 성실히 이행하려는 노력을 보일 것, 노력의 단계를 청구인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즉시 이행할 것을 합의했다. 물론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믿을만한 답변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4건의 정보공개청구 행정심판은 '종결'에 이르지 못했다.


2020년 5월 14일 제3자 의견 청취, 식약처의 개인 정보 유출

식약처 담당 주무관에게 성실 이행을 약속받은지 1달이 다 돼가던 날, 아침부터 사무실 대표전화로 나를 찾는 전화가 빗발쳤다. 처음 들어보는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들이었다. 대뜸 욕부터 하는 사람부터, 뜬금없이 왜 본인 회사 자료를 궁금해하냐, 다 지나간 거 들춰서 뭐 할 셈이냐, 경쟁사에서 무슨 제보가 들어갔냐까지 정말 다양한 전화였다. 곧 어떻게 개인 번호를 알았는지 카카오톡으로도 연락이 오고,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간간이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분들께 상황을 여쭤보니 식약처에서 제3자 의견 청취 절차를 밟기 위해 업체에게 공문을 발송하면서 내 개인정보를 포함해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내게 연락한 업체들은 모두 같은 날 식약처가 발송한 공문에서 개인 주소를 확인하면서 언론사 기자가 자신들의 회수종료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식약처가 업체에 발송한 제3자 의견 청취 공문

정보공개법은 제3자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할 때 정보공개법 시행규칙 별지 제4호의 3 서식에 의거해 정보공개 청구인의 성명과 주소를 작성하게 돼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주소는 상세 지번(건물번호, 상세주소, 참고항목)을 제외하여 제3자에게 알려주되 청구자에게도 제3자에게 이와 같은 사항이 통지된다는 점을 미리 알려 사전에 민원발생을 예방하여야 한다.

그러나 식약처는 내게 이 같은 사실이 통지된다는 점을 알리지 않았고, 제3자에게 공문을 보내면서 내 상세 주소와 직장명을 모두 포함해 통지했다. 청구인인 나는 몇 명에게 누구에게 내 개인정보가 알려졌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잔뜩 화가 나있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상황. 명확한 개인정보 침해였고, 청구인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식약처 담당자에게 당장 전화했지만 출장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날부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가 올랐다. '전면전을 선언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5월 15일 국민신문고 민원 접수

전화가 끊어지면 또 오고 끊어지면 또 오고. 잠시 회의나 취재로 자리를 비우면 고스란히 팀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이 이틀째 지속돼 편집회의에 보고했다.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분들께는 청구이유와 청구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드렸다. 대화가 불가한 분들께는 청구인에게 이런 협박과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 왜 문제인지 본인들이 궁금한 사실을 내가 아닌 식약처에 물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보공개센터에 자문을 구하고 관계 법령과 운영 매뉴얼 등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정보공개포털, 행정안전부에 신고글을 남기고 전화를 걸었다. 어느 곳에서도 조치를 해주거나 대응 방법을 안내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공무원에겐 민원이 답이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식약처에 민원을 넣었다.


2020년 5월 28일, 식약처 사과하다

민원 응답 기한이던 5월 25일 1차 연장이 결정됐다. 그리고 이틀 뒤 사무실 대표전화로 식약처 담당 주무관이 연락이 왔다.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내 개인정보를 받은 업체가 수백 곳이라는 사실을 이때야 알았다. 그간 피하고 피하다 민원 응답 기한에 몰려서야 전화 온 게 괘씸해서 나도 내일 오전 10시에 오시라고 했다.

다음 날인 28일, 9시에 또 대표전화로 전화가 왔다. 이번엔 식약처 담당 과장. 주무관의 단순 실수로 같이 와야하는데 본인은 일정상 전화로 사과드리는 점 양해 바란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담당 사무관과 주무관을 사무실 건물 1층 카페에서 만났다. 2년 여의 행정심판동안 식약처 담당 직원이 먼저 만나기를 요청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다시 생각했다. 공무원은 민원이 답이다.

한 시간 가까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식약처의 해명은 주무관의 업무 미숙으로 인한 단순 실수라는 것이었다. 식약처의 의도성 짙은 일처리와 이후 대응에 대해 추가로 질의했고 업체 측의 전화가 식약처에도 처리 불가한 수준으로 빗발쳐 불가피했다는 해명도 들었다. 여전히 의심가는 대목은 많았지만 연차가 상당해 보이는 주무관이 안쓰러웠다. 옆에 같이 왔지만 관리 책임만 운운하는 새파랗게 젊은 사무관이 얄미워보일만큼.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 사실을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 민원을 취하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들이 들고 온 음료수 담긴 박스는 그대로 오송으로 같이 돌려보냈다.

그리고 민원 응답 1차 연장 기한인 6월 3일 식약처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남겼다. 애초에 큰 기대가 없던 나도 더 이상 대응하길 포기했다.

식약처의 민원답변 내용


2020년 7월 31일, 식약처의 정보공개 비공개 결정 통지

또 두 달이 흘러 7월의 마지막 날 밤,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정보공개 결정 통지(접수번호 5156129, 5156136)" 제목의 공문을 받았다.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고 재검토하라 재결했더니, 식약처가 다시 검토한 결과 1건은 비공개, 1건은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공개하겠다는 1건은 길어진 싸움 사이에 식약처가 정책을 바꿔 홈페이지에 공개해온 자료고, 비공개하겠다는 1건은 1년 6개월 전 비공개 결정 당시 식약처가 내세운 비공개 사유와 동일했다.

왜 회수종료보고서는 공개하면서 회수평가보고서는 공개할 수 없는지, 행정심판위원회의 같은 처분을 받고 업체로부터 같은 의견을 조회했는데 어떤 심의를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식약처 자체 심의위원회 검토 자료가 궁금하다 식약처에 물었더니 본인도 모른다 하시더라.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할까요 물었더니 일단 해보라 안내를 받았다. 1년하고도 반년을 같은 답을 얻기 위해 썼구나. 오호 통재라.

재결 이후 식약처가 발송한 공문


2020년 9월 8일, 정보공개 결정에 따른 자료 1차 공개

3월 31일 재결서를 받은지 162일 만에 1차 자료를 받았다. 최대 2개월 이내에 관련 자료를 송부하겠다는 메일과 함께 zip파일을 받았다. 담당 주무관은 청구인도 모르게 또 바뀌어 있었다. 성실한 재결 이행을 약속했던 주무관도, 지난번 얼굴 보고 사과하러 온 주무관도 아닌 또 다른 사람. 네 명의 주무관을 거치는 동안 이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식약처가 50개의 회수종료보고서를 첨부해 1차 공개한 메일 내용

그렇게 받은 자료는 또 역시나 예상한 대로 검은 줄 투성이인 회수종료보고서 50개. 회수종료보고서인데 회수 종료일이 비공개다. '허가인증신고번호'를 알면 알 수 있는 등급 같은 다른 정보도 검은 줄. 이미 식약처 의료기기전자민원창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회수의무자 유형도 검은 줄. 정보공개 청구일로부터 행정심판까지 거쳐 642일 만에 받은 자료는 이렇게 생겼다.

642일 만에 식약처가 공개한 회수종료보고서


2020년 10월 15일 자료(회수종료보고서) 2차 공개

회수종료보고서 300건 메일 첨부

2020년 10월 21일 자료(회수종료보고서) 3차 공개

회수종료보고서 200건 메일 첨부. 자료 공개가 끝난 걸까? 아직 더 남은 걸까? 알 방법이 없다.

2020년 11월 5일 자료(회수종료보고서) 4차 공개

회수종료 보고서 864건 메일 첨부.

2020년 11월 6일 자료(회수종료보고서) 5차 공개 완료

회수종료 보고서 348건 메일 첨부. 정보공개청구일로부터 701일.

701일, 공개 완료


그럼에도 행정심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

정보공개의 목적은 투명성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다. 하지만 여러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비공개할 경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의신청, 행정심판 이후에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청구인이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 판결을 받기까지 지금보다도 더 긴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의도적인 비공개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2년 넘게 지속한 이 분투기 역시 내가 업으로 하는 일이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관이 의도적으로 비공개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일반 시민이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지나치게 크다.

'일반에게 공개하면 혼란의 우려가 있다'며 대다수 정보를 비공개했던 우리 식약처는 뉴스타파 보도와 행정심판 청구 이후 '의료기기 정보공개'를 대폭 확대했다. 2019년 1월부터 홈페이지에 '의료기기 이상사례 정보' 메뉴를 만들어 내역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부작용 사례가 보고된 의료기기의 실제 제품명, 업체명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공공 DB가 처음으로 구축된 것이다. 식약처는 그동안 결함이 발생한 의료기기 리콜(회수) 기록 역시 리콜 종료 시점으로부터 3개월 동안만 공개해왔다. 당시 식약처 측은 임의로 리콜 기록 공개시한을 정한 이유에 대해 "리콜 기록이 업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의 '3개월 시한부 공개 기준' 역시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삭제됐다.

꾸준히 싸워야, 지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해야 변화가 생긴다. 2년의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심판을 통해 얻은 정보는 그 자체로 보도할 만한 가치를 가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난한 싸움을 계속해온 이유는 하나다. 식약처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도하고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행정심판을 꾸역꾸역 진행하면서 꾸준히 일 똑바로 하라고 짖어주는 것. 얼마나 많은 국가가 '국민과의 신뢰'를 위해 안전정보를 공개하는지 모르는 우리 식약처에겐 짖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ICIJ는 뉴스타파와 미국 AP, NBC, 영국 BBC, 가디언, 일본 아사히신문 등 전 세계 36개국 59개 언론사 소속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과 함께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안전성 정보를 수집한다. 각국 언론인들은 공개된 기록을 모으는 동시에 자국의 보건당국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서 8백만 건 이상의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검토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국제 의료기기 데이터베이스'(IMDD-International Medical Devices Database)에서는 11개국의 의료기기 리콜 및 부작용 관련 정보가 7만 건이상 축적돼 있고, 이 정보들은 1100곳 이상의 의료기기 업체 정보와 연결된다. 제조사, 제품명 등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해당 의료기기의 정보를 목록화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국 제조사와 의료기기도 모두 검색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번 행정심판을 통해 제공받은 자료 역시 추가로 제공할 예정이다.


비록 한계가 있지만 정보공개청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시 기능을 갖고 있고, 양질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취재수단으로써 가치가 확실하다. 정보공개청구는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계속하다 보면 어떤 정보를 청구할지 감이 잡히고 담당 공무원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노하우도 생긴다. 다른 기관이 어떤 정보공개청구를 했는지 보고 따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정심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길고 긴 분투기를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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