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생물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다
노아 홀리 Noah Hawley는 미국 텍사스 출신의 소설가이자 TV쇼러너, 영화감독으로
대표작으로는 <파고Fargo> 시리즈, <리전Legion> 시리즈 그리고 지난 8월 시작한 <에이리언: 어스Alien: Earth> 시리즈가 있습니다.
전 <파고>시리즈를 처음 보고 노아샘에게 입덕(?) 하게 되었는데요.
영화의 장소적 배경, 분위기만을 뚝 떼어와 전혀 다른 사건들을 입혀서, 그것도 매 시즌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서사를 깔끔하게 표현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리전>또한 소설가 출신이지만 그 어떤 영화학도보다 세련되게 풀어내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새롭게 반했고
그야말로 미친놈인 데이빗(프로페서X의 아들이죠...)을 표현하는 댄 스티븐스의 연기력까지 합쳐져 노아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머릿속을 휘젓는 롤러코스터같은 드라마를 보고 싶다? 그렇다면 리전을 추천합니다. (디즈니플러스/3시즌 종영)
<파고>와 <리전>은 나중에 따로 소개하도록 하고 이번엔 최근작 <에이리언: 어스>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그 전에 노아와 FX채널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고> <리전> <에이리언:어스> 모두 미국 FOX계열의 FX채널에서 방영한 시리즈로, FX의 사장 존 랜그라프John Landgraf는 노아에게 창작에 관한 한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파고>는 2014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5시즌을 방영했는데 그 기간은 총 10년으로, 노아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가 이렇게 길게 끌고가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랜그라프는 노아가 새 시즌을 만들 수 있게 먼저 제안했고, 지원과 기다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파고>는 아직 공식 종영이나 리뉴얼되지 않은 상태로, 랜그라프는 2024년 Variety 인터뷰에서 <에이리언: 어스> 리뉴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파고> 6시즌을 제작하게 된다면 그 전에 에이리언 시리즈를 최소 2시즌은 집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네요. <에이리언> 관련 제작도 2018년경 FOX 쪽에서 노아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하는데 노아는 TV시리즈를 원했고, 곧바로 성사되지는 않았는데 디즈니와 합병 후 시리즈가 얘기되었다고 합니다. (그만 알아보자...)
노아는 2021~22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극본을 쓰고, 2023년 미국 작가/배우 파업 때 태국 방콕에서 영국 배우들을 주축으로 촬영을 하게 됩니다. (파업 때는 협상테이블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촬영이 오래 지체되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에이리언: 어스> 1회부터 등장하는 뉴 시암 시티가 바로 방콕인데요. 현지 스태프들도 많이 참여하고, 태국 프리미어도 따로 했을 정도로 태국은 이 시리즈에 특별한 곳이 되었습니다.
<에이리언:어스>의 장소적 배경은 지구의 뉴 시암, 시대적 배경은 1979년작 <에이리언>의 배경 2년 전인 2120년입니다. 기본적인 세계관은 79년과 86년 영화와 궤를 같이 하되, 리플리 등 영화의 등장인물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이리언> 프랜차이즈 최초로 지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고요. (<프로메테우스> 오프닝, <에이리언 vs프레데터> 시리즈 제외)
새로운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은 마시/웬디, 허밋 남매입니다. 인간인 마시는 말기 질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녀로, 프로디지라는 회사의 연구 아래 첫 번째 하이브리드가 됩니다. (성인 합성인간의 몸에 인간의 의식을 다운로드) 마시는 하이브리드가 되며 웬디로 이름을 바꾸고, 인간이었던 과거를 정리해야 하지만 하나뿐인 오빠는 마음의 짐으로 남죠.
마시의 오빠 허밋은 뉴 시암에서 위생병으로 활동하고 있던 중, 또 다른 대기업인 웨이랜드-유타니 소유의 연구선인 USCSS 마지노호의 갑작스러운 지구 충돌로 구조작업에 파견되어 외계생물과 마주치게 되는데, 웬디가 오빠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 외 구구절절한 줄거리는 생략하고 저에게 <에이리언: 어스>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를 얘기해 볼게요.
1. 지구라는 배경
망망대해 우주에서 현재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로 배경이 바뀌면서, 현실감에서 오는 긴장이 더해졌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외계 생물체를 새로운 실험체, 즉 돈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도사리는 지구에서 제노모프 등의 생명체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주목되는 부분이에요.
2. 에이리언 세계관의 확장
시리즈의 매력이라면 캐릭터나 세계관을 시즌별로 기획해 제대로 그 얼개를 짜고 디테일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일 텐데요.
에이리언 프랜차이즈는 각 영화가 캐릭터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그 배경이 되었던 시대나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설명이 자세할 필요도 없고요. 이런 점이 노아에게는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는 기본적인 뼈대만 있었던 구성들에 살을 붙여 시리즈에 개연성을 주는 요소들로 만들어 냈습니다. (노아는 이 시리즈가 만약 이어지게 된다면, 몇 시즌 후에는 영화 세계관의 사건과 직접 만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3. 새로운 컨셉
2번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노아는 79년에 상상했던 2100년대의 모습에 새로움을 더해 변화를 줍니다. 우선 기존 영화에 등장했던 사이보그, 합성인조인간(신세틱)에 하이브리드라는 존재를 추가했는데요. 하이브리드는 합성체의 몸에 AI대신 인간의 의식을 직접 다운로드하여, 본질적으로 죽지 않는 인간을 표방합니다. (요즘 화두인 AI는 명함도 꺼낼 수 없는 세상...)
그래서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피터팬의 레퍼런스를 따 와서, 프로디지 사의 연구기지는 네버랜드로, 하이브리드 개체들은 피터팬의 등장인물로 새로 명명하고, 작품의 내용을 내레이션 형태로 직접 전달하기도 합니다. 기존 <에이리언> 영화들에서 합성인간들이 학습을 통해 ‘인간다운’ 특징을 조금 보였다면, 하이브리드들은 인간 본연의 의식을 가진 만큼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엄청나게 하게 되며, 보는 우리도 이들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게 돼요.
이 시대의 지구 또한 정부가 아닌 5개 거대 회사가 지구를 식민지화하고 있어 지금보다 심한 양극화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트럼프의 미국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에요.
노아는 <에이리언: 어스> 1회 팟캐스트에서 "원작 영화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줬는지를 기억하려고 했고, 영화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통해 이 느낌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파고> 시리즈 등 그의 다른 작품들을 봐도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만큼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그에 기반해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해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에이리언>의 호러가 나에게 매력적인 점은 괴물이 인간에게 하는 짓들 뿐만이 아닌,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인간)가 더 나쁜가? 라는 질문은 참 흥미로운 것 같다" 라고도 했는데, 시리즈의 추가적인 설정을 한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괴물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들여다보는 이 매력적인 시리즈, 추천해요. (디즈니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