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티 슈프림> - 보고 왔습니다

by becky

*한국 개봉 전이라, 주요 스포일러는 담지 않았습니다.


<마티 슈프림> 보고 왔습니다.

런던 여행 중이었던 (개봉일을 맞춘 억지여행) 12월 26일에 봤어요.

평소에도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잘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 있는데 최애의 영화를 한국에서 언제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블록버스터만 동시개봉하는 한국 극장계 규탄한다)

영화를 봤던 런던의 극장들 (네 n차 했습니다. 행복..)

<마티 슈프림>은 일찍부터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의 열과 성이 담긴 신선한 마케팅으로 국내에까지 꽤나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의 밈이나 마케팅이 영화보다 더 눈길을 끌게 되면 영화자체의 의미는 희석되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도 현지에서는 비평적,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 26년 1월 초 기준 Metacritic 89점/ 개봉 첫 2주간 860만 달러 수익을 올리며 A24 영화 중 미국 최고수익을 거둔 작품으로 기록을 세웠습니다 - 또한 영화를 직접 보니 '마티의 정신을 계승하여,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이 영화를 알리겠다'라고 한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티 슈프림>을 얘기하기 위해선 감독 조쉬 샤프디 Josh Safdie의 전작들인 <굿 타임>과 <언컷 젬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얘기는 없었지만 <마티 슈프림>까지 생각해서 주인공의 캐릭터성이나 영화의 스타일을 봤을 때 이들을 비공식적 3부작으로 묶어도 될 만큼 조쉬의 뚜렷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의 두 작품은 동생과 공동 연출했지만, 세 편 모두 조쉬와 로널드 브론스틴 Ronald Bronstein이 극본을 썼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행털이 후 경찰에 붙잡힌 동생을 꺼내고 꼬일 대로 꼬인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굿 타임>의 '코니', 빚을 갚기 위해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뉴욕의 보석상 <언컷 젬스>의 '하워드'와 같이 <마티 슈프림>의 '마티'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윤리적인 선을 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유별나고 막 나가는(?) 인물입니다. 다만 마티가 코니, 하워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꿈을 이룰 능력을 실제로 갖고 있다는 것이죠. (영화는 실존한 탁구선수 마티 레이즈먼 Marty Reisman의 인생과 그를 다룬 책 The Money Player에 영감을 받아 픽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점은 전작들과 결말에도 차이를 주는 요소인 것 같았어요.


저에게 마티 슈프림은 아주 이상하고,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1952년, 당장은 가진 것이 쥐뿔도 없는 뉴욕의 20대 청년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는 자신이 탁구를 통해 세계 최고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꿈에 중독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독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지 않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영화에서는 마티가 영국과 일본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여정을 따라가는데,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엮이고 그 과정에서 긴장 넘치는 탁구 매치, 아메리칸드림과 미국 예외주의, 반유대주의 같은 소재들이 흩뿌려지며 엔딩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갑니다.


영화는 마티 중심으로 흘러가는 만큼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의 비중은 압도적입니다. 다차원적인 인물을 꽤나 연기해 온 티모시이지만 - 메시아이기를 거부하는 폴 아트레이데스, 특출 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무심한 젊은 시절의 밥 딜런 등 - 마티 또한 못된 놈이라는 단순한 말로 정의할 수만은 없는 특이하고 복잡한 인물입니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지만 가난한 탁구 선수라는 직업(사실상 제대로 된 직업도 아닌)은 괴짜/비주류의 느낌을 주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소시오패스인가..?' 싶다가 그게 항상 먹히지는 않아서 웃음이 납니다. 계속 실패하고 꼬이는 와중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대단하고 어찌 보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연기폭이 넓게 요구되는 이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체화해서, 티모시는 이 판에서 뛰어 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티모시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도록, 조쉬는 마티의 세계를 아주 견고하게 지어두었습니다.

리얼리즘을 중시하며 게릴라 식으로 촬영하기도 하는 조쉬는 시대극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마티 레이즈먼의 이야기에 매료되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낼지 막막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80년대 음악을 들으며 50년대 자료화면을 보던 그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Tears for Fears, Alphaville, New Order 등의 젊음을 주제로 한 곡들을 삽입하게 됩니다. (이 곡들은 극본 단계에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50년대가 아닌 80년대 사운드트랙이 더해지면서 굉장히 새로운 분위기와 감정이 생겨나게 돼요.

그의 리얼리즘에 대한 집착은 캐스팅에서도 드러나는데,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비연기자들을 많이 고용했고 (실제 탁구선수들, 뉴욕 관련 인물 등) 샤크탱크 출신의 사업가 케빈 오리어리 Kevin O'Leary, 본인과 비슷한 배역을 맡은 (연기를 잠시 중단하다 컴백한 최고의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 Gwyneth Paltrow의 메타적인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정말 또 다른 현실을 보는 듯했습니다. (케빈 오리어리 왜 이렇게 연기 잘하죠? 이것 또한 감독의 역량인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잭 피스크 Jack Fisk (<데어 윌 비 블러드> <플라워 킬링 문>등)의 세심한 프로덕션 디자인, 샤프디 사단이라 할 수 있는 의상감독 미야코 벨리지 Miyako Bellizzi,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 Darius Khondji와 음악감독 다니엘 로파틴 Daniel Lopatin 은 최고의 합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신디 기반의 80년대 곡들과 몽환적인 OST는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굉장한 몰입감을 줬어요.

<마티슈프림> 스틸 사진작가 Atsushi ‘Jima’ Nishijima의 비하인드 컷들


<마티 슈프림>은 전형적인 전기영화나 스포츠영화가 아니지만 끝내주는 탁구 시퀀스가 있고, 어느 순간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이 있긴 하지만 닫힌 결말의 영화라고 하기도 힘듭니다. (이상한 영화라 했잖아요.) 그동안 주류 영화에서 잘 볼 수 없었던 거칠고 생생한 인물 탐구를 통해 영화적인 경험, 카타르시스를 양껏 느낀 150분이었어요. 병적으로 성공을 갈망하는 이 캐릭터에 대해 '대체 왜'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 재미는 사라지니 주의해 주세요.

티모시와 샤프디의 만남, 기다렸던 만큼 너무 좋았다 :D 한국에서 다시 n차 할 날을 기다립니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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