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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송 Dec 16. 2024

내돈내산 개고생 여행 스냅

시드니 스냅 촬영 후기

날짜: 2024년 1월 12일

시간: 11:00 ~ 12:00

장소: 파크 하얏트 호텔 옆 잔디밭  


며칠 전 예약한 스냅사진 촬영 날이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마자 집을 나섰다. 아이와 움직일 때는 반드시 시간 적 여유를 두고 움직일 것. '이지호' 육아 8년 차에 나온 나의 철칙이다. 일주일 치 날씨를 펼쳐놓고 비 오는 날을 피해 잡은 귀한 날인데 하늘을 보니 화창하다 못해 뜨거울 거 같다. 리뷰를 보고 해지는 노을 배경이 욕심나긴 했지만 여름이라 해가 지려면 밤 9시는 되어야 한다. 그 시간에는 예민하디 예민한 이 집 아들의 컨디션이 좋을 리 만무하니 최대한 오전 일찍으로 잡아봐야지. 안타깝게 첫 타임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어서 우리의 촬영은 11시가 되었다.


12월과 1월의 시드니는 그야말로 불볕더위. 비가 오면 기온이 훅 떨어져서 일교차가 크기도 하지만 태양이 워낙 강한 곳이라 40도를 육박하는 날도 많다. 예전에는 습하지 않아서 햇볕만 피하면 된다 했는데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를 시드니도 피해 가지 못했나 보다. 습하고 뜨거운 날씨가 이어진다. 오늘도 백 퍼센트 뜨거움. 원활한 촬영을 위해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겠다. 날씨 다음은 동선 체크. 혼자였음 기차로 한방에 윈야드로 가서 걸으면 금방인데, 나에겐 8살 먹은 까칠한 아들이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위해 기차를 한번 갈아타고 써큘러키역으로 가기로 한다. 파크 하얏트라면 써큘러키에서 하버브리지 쪽으로 쭉 걸어가면 되는데 그 길에는 그늘이 없다는 것. 일찍 도착하면 땀과 열을 식힐 카페가 필요하겠다. 레스토랑은 줄지어 있었던 거 같은데 10시면 오픈 전일 거고 근접한 곳엔 카페가 없다. 락스 쪽에 있다가 시간 맞춰 걸어가야 할 판인데 그럼 동선이 또 길어진다. 그러다 떠오른 만남의 장소, 파크 하얏트.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호텔 안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시내로 가는 내내 지호는 기차 노선도를 익히느라 바쁘고 나는 옆에서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검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서울의 서울역 같은 센트럴역에 내려서 써큘러키로 가는 기차로 갈아탄다. 써큘러키 역에서 내리면 눈앞에는 바로 오페라 하우스가 보인다. 지호의 선크림을 재정비 한 뒤 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햇볕 아래로 발을 내딛는다. 와 진짜 뜨겁다. 어서 걸어가자. 왼쪽으론 시드니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을 지나고 오른쪽으론 국제크루즈 터미널(Overseas Passenger Terminal)도 지난다. 태양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만 급하고 아들은 아주 느긋하다. 입만 조잘조잘 바쁘고 발걸음은 어찌나 느린지. 후. 숨을 한번 더 내쉬어야겠다. 오늘의 촬영이 끝나기 전까진 절대 화를 내면 안 돼. 명심해.



많이 변한 센트럴역을 지나 써큘러키



파크 하야트가 보인다. 11시가 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고 지호와 호텔 로비로 들어간다.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세상에나. 여기가 뷰맛집이었네. 로비 라운지에 앉으니 저기 눈앞에 오페라하우스가 떠 있는 듯 보인다.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해맑은 얼굴로 베이비치노에 입을 가져가는 아들을 바라본다. 너 진짜 부럽다. 엄마아빠 잘 만나서 이 나이에 이 뷰를 보고 있는 너. 얼마나 복 받은 줄 아니. 여전히 조잘조잘. 끝없는 재잘재잘. 아들의 입은 다물 틈이 없고 나는 자체 스피커 오프. 귀를 닫고 앞을 바라본다. 맑은 태양과 하늘 때문인지 물 색깔도 반짝반짝. 어쩜 이리 이쁠 수가.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자꾸 말 좀 들어달라는 아들내미와 씨름을 하다 보니 금방 11시가 가까워진다. 화장실 다녀오라고 억지로 등을 떠밀고 나도 거울을 한번 본다. 드디어 스냅촬영 임박.



파크 하얏트 호텔 로비 라운지



시드니스냅으로 검색을 하니 꽤 많은 작가님들이 나왔다. 선택지가 많으면 더 결정하기 힘든 법. 어느 작가님 프로필에서 '시드니에서 20년째 웨딩 스튜디오를 운영'을 보고 혹시나 우리 웨딩 사진을 찍어주신 분인가 싶은 마음에 그분으로 결정했다. 10년 전 나는 두바이, 남편은 시드니, 결혼식은 서울. 웨딩사진을 찍나 마나 고민을 하다가 시드니에 한국 웨딩업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비행스케줄에 맞춰서 웨딩촬영을 예약했다. 휴가도 아니고 비행 가서 웨딩사진이라니. 혹시나 스케줄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고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도 그 덕에 시드니 랜드마크에서 찍은 웨딩 사진을 얻었고 십 년이 지나 오늘 촬영까지 하게 되었으니까 좋은 결정이 아니었을까.



10년 전 찍은 웨딩사진



"안녕하세요. 지호야 인사드려. 오늘 우리 사진 찍어주실 작가님이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계신 덕분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쭈뼛쭈뼛 지호와 작가님의 어색한 첫 만남. 하지만 어색함도 잠깐, 우려했던 아들의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 긴장을 한 건지 남자 어른 작가님이 마음에 든 건지.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장착하고 작가님 옆에 딱 붙는다. '호주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산다, 수학을 잘한다, 주산은 몇 급이다, 태권도를 한다' 등등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아니 넌 수다 떨러 온 게 아니야. 작가님 카메라에 찍혀야 하는 거야. 이리 와. 온갖 눈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아이고 이를 어쩌나. 죄송해요 작가님.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아요. 8살이랑 촬영은 무리였나 봐요. 마음씨 좋은 작가님은 절대 아니라며 손을 내저으신다. 원래 이 나이 남자애들이 힘들긴 하지만 이만하면 아주 잘하고 있는 거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신다.



카메라에 잡힌 레이저와 복화술의 현장

 


우리의 이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하버브리지 아래에서 갑자기 태권도 품새를 하는 우리 아들.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구나. 내 표정 내 포즈 이런 건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얼굴은 땀과 함께 점점 썩어 들어갔고 마음속으로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라 그 생각만 가득했던 거 같다. 돈 주고 사진 찍어달라 했다가 빨리 끝나라니 참 아이러니 한 상황.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예약할 때 천문대 촬영도 부탁드렸다는 것. 시드니 천문대는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멋있어서 시내 투어에 꼭 넣어야 장소이기도 하고 우리 웨딩촬영도 했던 곳이라 욕심을 낸 건데 뒤늦게 후회막심이다. 파크 하얏트에서 천문대까진 도보로도 가능하고 차로는 5분 정도 짧은 거린데. 그 5분 만에 이지호가 멀미한다며 속이 안 좋다고 어찌나 징징거리는지. 저 오버스러움을 어쩌면 좋을까. 천문대에서 내 멘탈에 위기가 왔다. 눈으로는 레이저를 쏘며 이를 꽉 물고 '이제 그만해'. 엄마의 복화술이 결국 나와버렸다.



카메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장면



"다 끝났어? 잘 찍었어?" 정민언니의 문자에 나의 답. "내가 미쳤지. 미쳤어. 돈 주고 이 고생을 왜 했을까. 건질 사진이 하나도 없을 거 같아." 기차에선 두통이 와서 지호에게 휴대폰을 던져주고 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수다쟁이 아들 대신 내 입이 터져버렸다. 언니를 끌고 방에 들어가 이지호의 만행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언니는 웃으며 조용히 내 목과 등에 알로에 젤을 발라준다. 신경이 온통 아들한테 가있느라 뜨거운 태양 아래 정작 내가 익어가는 줄은 몰랐나 보다. 목과 등에 깊은 브이 라인으로 탄 자국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꽤 오래 없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아들의 얼굴은 살짝 그을러 지긴 했지만 여전히 백옥처럼 하얗다.   


찍은 사진은 색감 보정만 해서  1-2달 내에 보내줄 거라 하셨다. 사진이 밀려있어서 잊을만하면 갈 거라고. 시드니에서 돌아오자마자 명절을 치르고 억지로 일상에 나를 구겨 넣고 있던 어느 날, 선물처럼 사진 파일이 도착했다. 기대를 전혀 안 하고 있었는데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괜한 고생은 아니었구나. 그림 같은 배경과 시드니 자연광이 다 했다.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들도 사진 속에선 과함이 없어 보인다. 그저 천진난만 아이일 뿐.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인내심이 강한 작가님께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내돈내산 개고생의 그날이 우리에게 평생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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