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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Jan 23. 2024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그대

솥뚜껑 삼겹살

 

 캠핑을 다닌 이후로는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캠핑메뉴에 고기가 빠지지 않기 때문에)

캠핑을 다니기 전. 별일 없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남편의 최애템인 '안방그릴'을 켜놓고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곤 했다. 베란다가 넓은 집에 살 때는 환기도 해가면서 가끔은 베란다에서 구워 먹기도 했었는데 요즘 그랬다가는 바로 인터폰이 울릴지도 모른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에는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안방그릴을 안쓸 때는 특히 후드도 켜야 하고 기름 튀는 걸 막으려고 상자 또는 신문지를 널찍히 펼쳐놓기도 하고 먹고 나면 꽤 오랜 시간 환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번거롭긴 해도 한창 성장기 아이들에게 돼지고기는 필수라는 핑계를 대 가며 부모도 어떻게서든 먹을 기회를 만들곤 한다.




 캠핑이 휴식기인 요즘 '구워 먹는 돼지고기'를 안 먹은 지 오래라며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노릇노릇 기름진 고기가 필요해!! 괜히 기운도 없는 것 같고, 기분도 다운돼' 집에서 한번 먹을까 하다가 급 번거로움이 생각나 집 주변을 탐색해 본다. 그날은 그냥 탐색만 하다 끝났다. 얼마 안돼서 지인 가족이 놀러와 적극적으로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에 열심히 검색해 본 결과 집 근처 <솥뚜껑 삼겹살> 집을 알아냈다. 지나가면서 간판은 자주 봤는데 가서 먹을 일이 없었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

가보니 '이곳 맛집인가?' 싶을 만큼 이른 시간에 갔어도 테이블이 꽉 차 있다. 겨우 자리가 나서 두 가족이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둘러본다.

'보성녹돈! 미나리?' 아니 보성녹돈이라면 고기질도 괜찮은 듯하고 미나리에 혹한다. '몸속을 기름으로 채우기엔 미안함이 드니 미나리와 함께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먹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구. 워. 준. 다' 우리 집 고기 굽기 담당은 남편이다. 늘 고기를 굽다 보면 팔을 뒤덮는 덥수룩한 털이 꼬슬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오늘은 쉴 수 있다니 본인도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음에 한결 편안해 보인다.

고기와 찬으로는 고사리에 김치, 콩나물, 미나리가 한 접시 나온다. 고기판도 널찍한 데다 안 바꿔도 될 정도로 들러붙지도 않고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후식으로는 막창에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다. 잘 구워진 막창에 먹는 특제소스 맛은 막창 전문점 집 못지않다. 지인은 '이거 생각나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야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연말에 뭘 시켜 먹을까? 외식할까? 고민하던 차에 어디든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안 나가려던 발길은 결국 또 <솥뚜껑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 넷이서 굳이 돼지고기 가성비를 따지자면 사다 구워 먹는 편이 낫지만 함께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속도로 먹을 수 있으니 이것 꽤나 만족감이 크다.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최대한 기름진 고기는 피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 부부는 돼지고기를 많이 사랑한다. 멀리하기엔 너무나도 가까이하고픈 돼지를 어찌하면 좋을까? 미나리랑 행복하게 먹으면 0칼로리 믿어본다.

다음 달 결혼기념일도 여기 찜콩! 




*맛있게 먹고, 맛있어서 남긴 후기.  

 내돈내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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