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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22. 2024

내 영혼의 단짝, 순댓국

순댓국을 좋아한다. 순대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순댓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순대와 순댓국은 카테고리가 다른 음식이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인데 빵은 나에게 신남과 즐거움을 주는 반면, 순댓국은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음식이다. 뜨끈한 국물이 있어 그런가. 갈비탕도 뜨끈한 국물이 가득하지만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언제 먹어도 날 벅차게 행복하게 해 주는 순댓국. 이런 걸 보통 소울푸드라고 하지 않나. 내 영혼의 단짝.


묵직한 뚝배기에 김이 팔팔 나는 순댓국이 나온다. 공깃밥을 하나를 몽땅 투척한다. 들깻가루를 한 스푼 듬뿍 넣는다. 잘 섞어 간을 보고 새우젓도 살짝 넣는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먹기 때문에 순대 몇 개와 국에 만 밥을 빈 공기에 던다. 일단 무김치를 한 입 먹고 시작한다. 내장들은 좀 식었다. 오독오독 하나 먹고 아직 식지 않은 순대도 입에 넣고 습습 후후, 공기를 넣어 식히며 먹는다. 순댓국 러버에게 최근 좀 바뀐 것이 있다면 다진 양념. 예전엔 다진 양념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순댓국이 반쯤 남았을 때 다진 양념을 푼다. 아, 사람들이 왜 다진 양념을 넣어 먹는지 알겠네. 얼큰하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지. 다진 양념을 푼 이후에야 비로소 순댓국이 왜 술국인지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난 알쓰. 소주 한 병 시켜서 딱 한 잔만 하고 싶은데 아쉽다. 이제 몇 입 남지 않았다. 싹싹 먹으려면 뚝배기를 받침대에 거쳐 기울게 만든다. 완뚝이다. 하, 배부르다.

너무 팔팔 끓였더니 쉬이 식지않는 순대


오픈런을 해도 늘 줄이 길다는 농민백암순댓국을 남편이 포장해 왔다. 오, 남편 사랑해.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더니 역시 맛있다. 여기는 특이하게 다진 양념이 이미 들어있는 매콤한 스타일이다. 요즘 내 취향에 딱이다. 뚝배기에 못 먹어서 아쉽지만 유명한 순댓국을 집에서 먹을 수 있으니 충분하다. 마포일대에서 유명하다는 호남식당 순댓국도 정말 맛있었다. 여기도 말간 국물은 아니었고 간지 좀 되었지만 머리 고기 같은 것이 큼직하게 썰려 많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평일 점심에 줄 서서 먹은 종로직장인의 맛집, 산수갑산도 잊지 못할 맛이었다. 순대정식을 시키면 모둠순대와 건더기 없는 국물이 나와 따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을 것 같다.


글을 쓰려고 사진첩을 뒤져본다. 우수수 쏟아질 줄 알았던 순댓국 사진이 스크롤을 한참 내리고 검색을 해야 겨우 나온다. 물론 먹으러 가서 사진을 매번 찍진 않지만 내 영혼의 단짝을 이렇게 소홀히 했다니. 생각해 보니 정말 먹은 지가 꽤 됐다. 친정 근처에 있던 순댓국집은 이제 이사를 해서 일부러 찾으러 가야 하는데 친정에 갈 때는 사위와 손주와 함께인지라 외식메뉴로 순댓국이 되기가 쉽지 않다. 친한 언니와 브런치로 순댓국을 먹으러 갔을 때 빼고는 브런치로 순댓국을 먹자는 사람도 없었다. 주말에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킬 때도 아이취향, 남편취향 맞추다 보면 순댓국집이 후보에 안 오른다. 약속 없으면 집에 있는 음식, 냉장고에 남은 음식 먹느라 바빠 혼자 밖에서 사 먹을 일도 시켜 먹을 일도 별로 없다. 순댓국 생각나지 않는 내 영혼이 충만했던 나날들이었던 걸로 위로해 본다.

오래된 사진 말고 새로운 사진 찍으러 가야겠다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 것 같고, 연락이 한참 없어도 잘 지내고 있구나 싶은 친구가 있다. 늘 만나고 싶긴 하면서도 매일 전화로, 카톡으로 수다를 떨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 기숙사 메이트로 처음 만나 어리바리하던 20대를 함께 시작한 친구다. 같이 갔던 유럽여행도 신나게 웃고 떠든 기억들이 가득하다. 결혼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게 되었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는 이 선택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친구 영향이 컸다. 친구와 서로 믿음과 신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잘 통한다 생각했고, 무엇보다 친구의 신앙생활을 보며 천주교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에도 늘 날 염려해 주고 내편이 되어주던 친구는 결국 내 대모님이 되어주었다. 순댓국 같은 그런 친구. 내 마음 깊은 곳 한편에 늘 있다. 든든하게 날 지지해 준다. 배달로 먹기보다는 식당 가서 뜨거운 뚝배기에 나와야 제 맛인 순댓국처럼 만나서 얼굴 보고 한바탕 수다를 떠는 맛이 있는 친구. 각자 생활에 바빠 최근에 또 연락을 한참 못했다. 친구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순댓국 끝내주는 곳이 있다고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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