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여행 후, 재 취업 프로젝트
남편이 세계여행 후, 새로운 직장에 취직한 지도 3년이 지나갔다. 우연한 계기로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사보에 여행기를 적게 돼서 잘 모르는 동료들도 남편을 만나면 늘 언제 여행을 다녀왔냐고, 부럽다고, 특이하다고 말하곤 했다. 대부분의 동료는 자세히 내용을 읽지 않고 남편이 원래 회사에 다니다가 휴직을 하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생각했다. 전 회사를 그 만두고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부인을 설득했냐고 묻는 남자 상사분들의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사실 세계여행이라는 아이디어는 누군가에게 설득하기 참 어려운 주제이다. 언뜻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에다가 대책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 크기 때문에 배우자도 마찬가지이고 양가 부모님들께 이야기하기는 더 어렵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내가 원래 여행을 좋아했기에 조금은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나도 처음부터 그 아이디어를 반기지 않았었다. 남편의 나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양가 부모님께 보여 드리기 위해 ‘PPT'를 만들겠다고 했다.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니 세계여행 그 후에 관련한 재무 계획과 직장 계획을 적을 거라고 했다. 공대생 남편의 문제해결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이다.
1. 여행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진정한 관심사를 끊임없이 찾고 그 분야에 새로이 도전해보는 것.
2. 현재와 같은 직무로 비슷한 조건 (회사, 연봉 등) 또는 그 이상 조건의 회사로 이직.
3. 현재와 같거나 유사한 직무를 목표로 회사 수준 및 연봉이 낮더라도 감안하고 일단 취업하기.
남편은 나에게도 같은 것을 적어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3번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와도 난 여행을 다녀온 걸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내가 한 선택을 감당하는 거니까. 세계여행을 가며, 그 정도 마음은 필요한 것 같아.”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세계여행 그 후에 대한 계획을 써보는 것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되었다. 불안했던 나도 이런 계획서를 작성해 보며 막연한 느낌이 사라졌고 여행계획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남편은 30년 동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보다 지금 해야 할 의무를 해나가는 일에 익숙했기에 이번 여행을 통해 뭘 좋아하는지부터 발견하고자 했다. 여행지에서 그는 늘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생각을 조언해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1번처럼 ‘상담사’ 쪽으로 진로를 찾아보는 선택지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봐도 그 방면으로 역량개발을 하고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 적어도 6개월, 취직까지 다시 6개월은 걸릴 것이 뻔했다. 남편의 나이와 경력을 고려할 때는 취직 자체가 쉽지만은 않은 것도 고민거리였다. 그 일이 남편이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다면 당연히 도전해야 했지만, 관심이 있는 정도였기에 모든 것을 걸고 새로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이전에 일했던 직무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외국계 회사 쪽에서 헤드헌터를 통해 많은 제안이 있었다. 첫 번째 회사가 외국계 회사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공백기가 1년 이하였고 4년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의 면접 기회도 주어졌다. 하지만 결국은 대기업 경력공채에 지원한 것에 먼저 합격이 확정되어서 다른 제품, 같은 직무에 조금 더 좋은 조건에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세계여행 계획이 1년 이상이어서 공백 기간이 길었거나 같은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군이 아니었다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타협점을 만들어 놓고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려서 그랬는지 회사를 그만둔 지 일 년 만에 다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상담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무렵 남편은 ‘멘토링’이라는 인터넷 플랫폼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20대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취업 시장을 직무 멘토링을 통해 도와주는 서비스가 생기고 있었고 그곳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취업 준비생들과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후 그렇게, 새로운 직장에서의 2막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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