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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 Jane Jan 09. 2022

이집트의 봄

삶에 나만의 이름표를 붙여주기 



*부부세계여행 후, 한국사회에 5년간 정착했다가 남편의 이집트 발령으로 이집트에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실시간 이집트 생활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5월이 되면서 낮에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자 이집트의 사막기후가 실감이 났다.  ‘라마단’의 표면적인 뜻이 ‘더 운달’이라고 하더니 한여름이 아닌데도 30도 중반에 뜨거운 온도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조금이라도 걸어볼까 생각하다가도 나가자마자 정수리에서 땀이 흐를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그나마 30도 초반 정도의 날씨라서 걸을 수 있겠다 싶어 오랜만에 산책할 겸 커피숍까지 가게 되었다. 근 2주간 한 번도 걸어서 온 적이 없어서 그런지 라마단 기간을 수 놓았던 연보라색 꽃들이 벌써 시들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난생처음 알게 된 연보라색 꽃이 시든 것을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여기저기 다홍빛이 강하게 도는 빨간 꽃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과 색을 맞추려는 듯 연분홍과 연보라의 계절을 지나 물감을 두 배 정도 더 머금은 꽃들이 열대 나무의 푸르름에 지지 않고 화려한 색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기온을 보면 나에겐 분명 여름이지만 현지인들은 이집트의 5월을 봄이라고 부른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이곳 봄 기후에 맞추어 자연은 더 많은 꽃을 찬란하게 빚어낸다. 노란색, 주황색 코랄 색 등 살면서 처음 보는 색감과 모양의 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매일 놀라는 중이다. 이쯤 되니 꽃들의 이름이 다 알지 못해도 매 월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월 2월 3월처럼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나만의 이름을.

4월은 키 큰 나무에 핀 연보라 꽃의 계절

5월의 태양보다 눈부신 붉은 꽃의 계절

6월은 또 어떤 꽃의 계절을 맞게 될까 기대하면서,

마음속 모든 계절의 이름을 나만의 감상으로 담고 싶었다.

그러면 이 공간도 남들이 말하는 이집트가 아니라 나만의 공간으로 태어날 테니까.



직접그린 우리동네 Maadi에 식물들



라마단이 끝났다. 그동안 현지인들은 금식하고 나는 아름다운 말들을 내 마음에 떨어뜨려 주었다.

오늘 봄기운과 함께 그 말들이 내 마음속에 꽃잎처럼 날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붙여주는 이름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30대 중반에 해외 살이을 시작한 내 삶에 스스로 이름표를 붙여주자고 다짐했다.


어떤 이는 부럽다고 하겠고 어떤 이는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삶

누군가는 그 나이에 무얼 하고 있냐고 물을 것이고 이집트에서의 삶이 무섭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다른 이는 동경하기도 하겠고 무작정 한국에서의 삶이 훨씬 편하다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 어떤 시선도 사실이 될 수는 없다. 


아니라고는 했지만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30대 초반까지도 남이 정의해주는 삶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기까지도 어려웠고 인지하고 나서는 변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붙이는 삶의 의미만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 이집트의 만발한 꽃들이 다시금 속삭이고 있다.

네가 스스로 붙이고 싶은 삶의 이름표는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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