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박사 생존기>
12월, 1월, 2월 세 달 동안 무직으로 지내면 쉼 없이 줄어드는 통장잔고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된다. 수입은 없지만 지출은 계속되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도 아니고, 그저 통장에 방치했던 남은 돈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될 수밖에 없다. 12월 한 달 동안 했던 가벼운 연구용역을 제외하면 무작정 쉬자는 목적에 맞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한 챕터의 일부분만 조사하고 작성한 연구용역으로 얻은 수입은 백만원 남짓. 그렇지만 1월의 갑작스러운 병원비 지출로 인해 출혈은 컸다.
최근에 하이브레인넷에서 박사졸업생 4명 중 1명은 무직자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1명이 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사 작성자가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기타수입을 올리는 박사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모른다는 장난스러운 생각도 동시에 했다. 주변 박사선배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박사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 뭐라도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굶어죽는 일도 드물고, 박사가 아니어도 뭐라도 하면 밥은 먹는다는 점에서 크게 와 닿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이기는 하다.
이전 직장에서 퇴사하기 전,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업이나 활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쏠쏠한 부수입을 올리고는 했다. 지역은 많이 좁다.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고, 새로운 인물이 유입되기 어렵다. 새로운 판을 원하는 기관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찾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연이 이어지면 다른 유사한 사업에도 연속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대게 이런 식으로 조직되는 것 같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작은 지역에서 개개인이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런 일들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안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내가 기관이 요구하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일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끈임 없이 나의 능력을 증명해보여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참 피곤하다. 그렇지만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연구라는 것도 그래야만 하기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다. 논문을 쓰고, 평가 받고, 게재를 승인 받는 일이 앞으로도 나의 과제다. 어디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모면할 수는 없다. 현대인은 그래서 바쁠 수밖에 없으니, 이 또한 나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수입이 안정적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월급쟁이가 좋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당분간 이런 수입에 기대서 살아가야 한다. 시간강사는 3월부터 시작되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2주간 연기된 개강이 얼마나 더 연기될지 가늠이 안된다. 같은 지역의 한 사립대는 4주간 개강을 연기했다. 3월에도 4대보험이 적용되는 정기적인 수입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나의 생계는 더욱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3월부터 하기로 한 연구용역들도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의 습격에 나 역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하이브레인넷의 채용공고도 낼만한 곳이 아직 없다. 제출한 연구계획서에 대한 결과도 6월이나 되어야 나오고, 그마저도 연구개시는 7월부터이다. 상반기 수입이 깜깜하다.
그래도 나는 삼시세끼 집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잘 지내려고 한다. 일부러 더 좋은 물건과 더 나은 음식재료를 구입한다. 우스운 일이지만 일할 때보다 택시도 더 많이 탄다. 아픈 몸을 돌보기 위한 나의 특단의 조치 같은 것이랄까. 연속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몸까지 아프고 나니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프고 싶지 않다. 고통은 나를 힘들게 하고, 그 속에 깊게 연루되는 순간 이상한 자기연민을 지속하게 된다. 자기연민이 넘쳐나면 꼴 보기 싫어진다.
그래서 삼시세끼 요리를 한다. 아침도 챙겨먹으려고 노력한다. 이전에는 고구마 같은 간단한 먹을 것으로 뭉개고 말았던 저녁도 밥을 꼭 지어먹는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매 끼니마다 새로운 밥을 짓는다. 맛있는 쌀이 익어 만드는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든다. 집에 있더라도 공부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적절히 안배하려고 한다. 가끔 산책도 즐긴다. 배가 나오면 안 되니까.
쫄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위축되지 않으려고도 한다. 주변 친구들은 나를 적절하게 배려해준다. 기분이 상하지 않게 나를 챙겨준다. 혼자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쉬는 내가 외롭지 않게 적절한 시기마다 나에게 만나자고 제안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만나는 친구들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은 내가 뒤처지고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의 휴식기를 충분히 존중해준다.
내 주변의 모든 커뮤니티는 대학원 공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해야할지, 나와 의견이 비슷하거나 대립되더라도 충분히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대학원에서 배웠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게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다고 해서 내 삶이 모두 예측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오랜 친구는 박사과정을 수료했지만 논문을 쓰지도, 졸업할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박사 이후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공포가 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공포가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삶에 보다 가까워지려면 그 공포를 이겨 내야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공포 대신 어떤 기대를 채워야하는데, 다수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 나아갈 수 있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해봐야지. 이전 직장에서 맺었던 연으로 상반기 연구용역이 하나 예정되어 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연구용역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상반기는 그마나 버틸 수 있다. 굶지 않고 밥을 잘 먹을 수는 있을 거다.
그러니까, 그 불안을 대수롭지 않게 마주하는 담대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