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박사 생존기>
비대면수업의 주가 시작되었다. 3월 둘째 주 정도에 개강 후 2주 동안은 비대면수업을 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오면서 대학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대학의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모두 코로나19는 처음인데. 게다가 대학의 서버는 불안정하기 그지없어서 영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한 주에는 지속적으로 접속불가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대학의 교학처장은 아주 정중한 사과문을 구성원 전체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 온라인 서버 담당자는 연달아서 강사들에게 동영상 업로드 지침을 이메일로 공지했다. 그동안 대학에서 수업은 언제나 교수들의 몫이었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불가침의 영역처럼 느껴졌던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면서 흥미롭게도 누구나 감시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근무의 형태, 일상을 대하는 보다 느슨한 태도.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변화된 일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금만 아파도 학교를 빠지거나 일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일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기 어렵다. 사회문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달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렇지만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숨 가쁘게 돌아가던 여유 없는 일상을 바꿔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대부분의 일을 완수해내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개학이나 개강이 연장된 적 없다는 게 더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내가 홍콩에 살면서 놀랐던 점이다. 어느 날은 날이 조금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당일에 세미나가 있어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행사가 날씨로 인해 취소됐다고. 한국에서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정도 날씨에 그렇게 오래 준비했던 행사를 하지 않는다니?
홍콩 역시 장시간 노동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다. 1년에 휴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날씨에서만큼은,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강경하게 대응한다.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일상화하고, 학생들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정부가 보다 혁신적으로 사고하길 바라지만, 결정자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 영향을 최대한 예측한다고 해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생긴다. 개학 연기와 비대면 수업의 전면적 시행은 정부가 내놓은 최소한의 방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다행스럽게도 예외규정에 속해 대면수업을 하게 되었다. 수강생 1명은 비대면을 원해서 어제 첫 수업에서는 전화를 연결해서 진행했다. 문제는 강의실에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아서 영상을 연결 못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배터리 소진을 고려해 미리 충전기를 챙겼어야 했는데, 잊어서 빌리러 다니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역시나 전화로 연결하는 수업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줌과 같은 화상회의 앱으로 비대면수업을 진행해본 수강생은 본인은 그냥 대면수업을 진행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핸드폰을 계속 들고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집중도 잘 되지 않아서 힘들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대학의 풍경을 보면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떻게든 원래 알고 있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냥 새로운 일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전환한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까? 나는 당장의 생계 문제로 인해 불안했을까? 대책이 없다면 지금의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이 상황이 최선인 것일까?
어쨌든 나는 이 와중에도 수업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음 주에도 수강생들을 만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대면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조심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일상을 새롭게 구성하며 이어갈 수밖에 없다. 모두의 노력과 이해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