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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Sep 23. 2020

02. 비대면수업 단상

<지방대 박사 생존기>

코로나 19 확산 제3의 물결이라고 해야하나. 8월 15일을 기점으로 확산된 코로나 19의 여파로 9월 개강을 앞두고 있던 대학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2학기에 수업을 2개나 맡은 내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대면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급격히 변한 상황에 따라 비대면수업이 지침으로 내려왔다. 지난 학기에는 소수의 대학원 수업이라 학생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면수업을 진행했던터라, 비대면수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기술적인 어려움을 느꼈다. 학교 시스템을 다루고, 영상자료를 만들고, 업로드 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수업 4주차에 접어든 지금은 기술적인 건 전혀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보다 모든 게 쉬웠다. 컴퓨터를 업무용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구축한 온라인학습시스템, 피피티에서 제공하는 슬라이드 녹화기능과 영상화는 이 모든 과정을 편리하게 만들어줬다. 2과목 중에서 1과목은 영상을 올리고, 1과목은 줌을 통해서 실시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줌에서 영상강의로


1주차 강의소개를 줌을 통해 했었다. 그래도 수업인데 서로 얼굴 한 번은 봐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양과목은 무려 70명이나 듣는 대형강의라 줌을 통해 얼굴을 보는 게 무의미했다. 줌의 갤러리 모드로 봐도 학생들을 다 확인하려면 몇 페이지나 넘겨야 했다. 게다가 수업자료를 화면공유 기능을 통해 띄어놓은 채 학생들 얼굴을 지속적으로 확인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소통이라는 게 있을 리가 있나. 1주차 강의소개는 오리엔테이션이고, 수업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겠다는 담당선생의 브리핑 정도니까 더 그랬다. 


줌의 뻘쭘함을 뒤로하고 2주차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상강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2과목 모두 영상강의를 만들면 내가 어느 정도로 힘들까, 라는 궁금증에서 나온 시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다. 영상강의를 만드는 과정은 일단 피피티를 제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건 대면수업을 해도 만들어야 하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 제작이 끝나면 슬라이드별로 강의내용을 녹음한다. 노트북을 보고 50분을 떠든다. 그 누구도 반응해주지 않기 때문에 혼자 열심히 말해야 한다. 마치 연기하듯이. 정말 학생들의 반응을 듣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말한다. 웃긴다. 


수, 금에 2과목이 모두 몰려 있는 시간표인데 이 일정에 맞춰 영상강의를 제작하니 진이 다 빠졌다. 50분짜리 수업이라고 해도 영상자료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2시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녹음한 피피티를 영상으로 변환할 때 화질이 최대로 설정되어 있어서 시간이 배로 더 걸렸다. 이래서 무식하면 고생한다고 했나보다. 나중에서야 화질을 낮추었다. 영상변환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한 슬라이드에 녹음을 했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 음, 이런 것이 녹음되는 게 싫어서 대본을 만들어 수업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더 힘들어서 그냥 자연스럽게 틀린 소리까지 다 녹음했다. 그리고 나서, 아 제가 아까 설명을 잘못한 것 같네요. 라고 정정해주었다. 그리고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녹음하는 게 힘들다고 학생들에게 징징대면서.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서로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2과목을 모두 영상강의로 제작하는 건 에너지가 너무 소모되는 일이었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다시 줌으로


결국 70명이 듣는 교양과목은 영상강의로, 40명이 듣는 전공과목은 줌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2주를 해보았는데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공과목은 줌으로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무작위로 호명해 질문을 한다. 교양과목은 최대한 설명을 쉽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상강의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1주차 때 줌 수업이 불편했던 이유는 소통할만한 내용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들으며 수업을 하니 그나마 나았다. 


어떻게 보면 줌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제시가 더 쉬워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들이 질문을 예상보다 많이 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이전의 학부 수업에서는 그 어떤 학생도 자발적으로 내게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수업이 끝나길 간절히 기다리는 눈빛으로 앉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두 과목 모두 학생들이 온라인학습시스템으로 쪽지까지 보내며 질문을 해서 놀랐다. 처음 줌 수업을 했을 때 깜빡하고 질문시간을 주지 않았는데, 다른 학생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남아서 질문하던 학생이 둘이나 있었다. 


이게 비대면수업의 장점 중에 하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이 활발하다. 물론, 40명 수업인데 지난 수업에는 30명만 수업을 들었다. 비대면으로 하니까 그만큼 결석도 쉽다는 게 단점이다. 영상강의를 올려도 질문이 온다. 물론 거의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2명 정도에게만 받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결국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할 사람은 하고 안할 사람은 안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수업시간을 학생들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비대면수업


영상을 올릴 경우, 어느 때나 본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출결인정기간을 설정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고 원래 수업하기로 되어 있는 날에만 출석을 할 수 있도록 변경했는데, 학생들이 다소 당황한 것 같았다. 다들 원래 수업시간에 듣지 않으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수업하기로 한 시간이 정해져 있고 당연히 그 때 들어야 하는데 왜 다들 다른 시간에 들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 당연했다. 


언제든 듣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정해진 수업시간에 들을 이유가 없다. 편한 시간에, 듣고 싶은 시간에 듣는 게 좋은 것이다. 이것 때문에 생각보다 비대면수업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조교도 학생들이 비대면수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이 우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대면수업에서 학생들이 누리지 못했던 자율성(?)을 수업을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 들으면서 만끽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비대면수업으로 인한 수업의 질, 학교 시설에 대한 접근성 저하 등을 이야기하며 등록금 감면을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비대면수업의 장점을 한껏 느끼고 있다. 모든 일이든 다 그렇다. 어떻게 다 나쁘고 다 좋기만 하겠는가. 학교에서는 비대면수업 지침을 연장했고, 일부 실기수업과 대학원수업에 한해서만 대면수업을 허용했다. 내 강의는 모두 학생수가 많아서 이번 학기 대면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비대면수업을 진행하는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학기에, 상황이 더 좋아져서 원래대로 대면으로 돌아오면 학생들도 잠시동안은 적응하기 어렵겠다고. 물론 대면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한 일상이니까 수용할 수는 있겠지만. 비대면수업의 편리함을 좋아했던 학생들이 아주 잠깐 동안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코로나19는 빨리 물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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