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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Aug 22. 2020

01. 이제 직장인

<지방대 박사 생존기>

일단, 무조건 해본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모든 게 도전이었던 것 같다. 정의하기 힘든 성격인 나는 삶의 어떤 지점에서 예기치 않은 선택을 거침없이 해대는 바람에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직업이나 연애 모두 마찬가지였다. 기회가 오면, 난 무조건 잡는다. 정말 이상한 게 아니라면 모든 경험은 해볼만하다는 근본없는 열린마음이, 나에게는 있다. 아주 많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문구를 싫어한다. 인생이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까. 가끔은 살아지는 대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반골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나는 지나친 고민과 심사숙고가 어떤 선택을 가로막는다고 보는 편이다. 특정한 기회가 나에게 왔을 때 일단 받아들인다. 이게 나의 기본값. 고민은 길어도 몇 시간에 불과하다. 


작년 11월 말 사표를 던지고 시간강사와 연구용역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9개월 동안 이어왔다. 실제로 노동한 시간은 6개월. 너덜너덜한 몸을 추스리고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쓰던 시간은 3개월. 9월부터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와 그렇듯 아주 가볍게 내 몸을 던졌다. 


다시, 직장인이 된 이유


1) 프리랜서 생활의 장점: 자유로운 노동시간. 시간통제가 잘 되는 편인 나는 일과 휴식을 분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2) 프리랜서 생활의 단점: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 불안정한 수입이다. 지난 3~4개월 동안 3개의 연구용역에 참여했다. 연구용역의 예산 활용 특성상 모든 연구가 끝난 뒤 연구비가 입금된다. 이 기간동안 나는 빚을 지며 일을 해야한다. 아니면 있는 돈을 깎아 먹으며 생활하거나. 그리고 또 다른 연구용역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생각치 못한 단점은 동료가 없다는 거다. 연구용역은 연구주제별로 연구진을 구성한다. 협업이긴 하지만 사무실이 있고, 거기에 모여서 함께 일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전형적인 동료의 느낌이 없다. 친구들은 이상한 직장동료들을 보면 혼자 일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고는 했지만 장장 9개월을 집에서 혼자 주로 일을 한 나는 생각이 다르다. 회의 때문에 가끔 연구진을 만나고, 연락하며 지냈지만 혼자서 일을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정한 사수의 느낌도 없었다. 그저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게다가 연구용역은 내 연구분야와 거의 연관성이 없었다. 이걸 반복하면 내가 발전할 수 있을까? 내 연구분야에 대해서는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나의 연구에 조언을 해줬으면 했다. 내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 때 함께할 동료들이 있으면 했다.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외딴 섬 같았다. 나는. 그래서 지속적으로 연구소 취업을 시도했다. 몇 차례의 낙방 끝에 연이 닿은 연구소가 생겼다. 


연구소가 정답은 아닐거다


연구소의 연구주제가 내가 관심있는 분야와 잘 맞아떨어지지만 지역연구의 측면에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이게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해보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뭐든지 할 수 있다. 내가 혼자 방향을 잡고 있지 못하다면 연구소의 의제로 잡아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전 사업단의 짧은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했고, 좋지 않은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서 조금은 두려움이 있기도 하다. 새로운 관계들이 줄 파동이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까. 변화를 거침없이 시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낯선 감정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저 내가 원했던 바를 아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앞선 사람들을 잘 따르자는 계획뿐이다.  


일단, 무조건 해보자는 나의 다짐이 만들어낸 많은 과정과 결과들을 보아왔다. 좋았거나 나빴거나 모두 나에게 다 어떤 울림을 주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무모한 도전과 선택의 가치를 믿는다. 아무 의미없는 일이란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비참한 일이어도, 만족스러운 일이어도 모두 나름의 의미를 찾는 거다. 실컷 욕하고 맘껏 즐거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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