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독립한지 7년이 됐다.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할 때마다 항상 의례처럼 반복되는 일이 있다. 새로 옮긴 집의 냉장고를 한아름의 밑반찬으로 채워주고 가는 엄마의 방문이다. 엄마의 음식은 다양하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얼린 양념불고기, 진미채볶음, 멸치볶음, 깻잎짱아찌. 비교적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챙겨오는 엄마는 언제나 1인가구가 해치우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양을 남기고 갔다. 처리하기 힘들다는 난처함과 동시에, 엄마의 음식은 냉장고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며 어떤 든든한 느낌을 주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김치는 너무나도 유용한 반찬이자, 마지막까지 남아 내 식탁을 지켜주는 우직한 존재였다. 고등어김치찜, 김치등갈비찜,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 김치말이국수 등등. 김치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을 때마다 멀리 있는 엄마가 가까이 느껴졌다. 다른 반찬이나 메인요리는 뚝딱 잘 만드는 편이지만, 김치만큼은 아직 도전해볼 엄두를 못낸 나에게 냉장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김치통은 그냥 엄마같았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엄마는 김치 담그는 법을 몰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갓난아기인 언니를 포대기로 감싸 등에 업고 어설픈 솜씨로 이런저런 살림을 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앳된 얼굴, 홍조가 서린 두 볼, 큼직한 눈망울, 짧은 커트 머리의 엄마는 시집 오며 이사한 낯선 지역에서 단칸방을 얻어 세를 살며 그 외로움과 서툼 속에 있었겠지. 출근한 아빠가 집에 없을 때면 홀로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며 그렇게 살았겠지.
김치는 커녕 기본적인 요리조차 해본적 없는 엄마가 오늘날 집밥의 달인이 된 건, 그 많은 시간동안 반복해야하는 당면한 과업으로서 식사준비 때문일 거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엄마의 밥이 맛있으면서도 서글펐다. 내가 20살이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친구 하나 없이 집에서 아이만 돌보며 살림을 하는 그림은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었다. 30살 중반을 향해가는 나는 지금까지도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 심지어, 20살 때부터 김치를 담가야한다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나에겐 20살 때부터 김치를 고민하고 30년 가까이 김치를 담가온 엄마가 있었으니까.
엄마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아마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엄마의 엄마, 내가 불러보지도 못한 외할머니는 엄마를 낳으며 돌아가셨다. 엄마의 아빠, 역시 내가 불러보지 못한 외할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적에 엄마를 잠깐 키우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부모가 없는 삶은 어떤 것일까. 상상할 수 없는 그 부재는 너무나도 아득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엄마는 항상 '김치라도 담가줄 엄마'의 존재를 아쉬워했다. 그래서 '김치를 담가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냉장고의 빈공간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엄마는 항상 김치의 존재 여부를 끊임 없이 물었다. 엄마가 가져보지 못한 엄마. 그 엄마를 나에게 주고 싶어하는 엄마. 그게 삶의 중요한 이유인 엄마. 가족에 대한 꿈이 없는 나에게 엄마의 애정은 가끔 숨이 막히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냉장고 속의 김치는 든든하면서도 내 마음 속에 어떤 묵직한 잔상을 남겼다. 1인가구가 제시간에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김치의 양, 지나치게 익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을 불러일으키는 김치, 거기에 담겨 있는 엄마의 애정. 오묘한 그 감정의 뒤섞임.
그럼에도, 난 엄마의 배추김치를 좋아한다. 어떤 해에는 고춧가루를 잘못 써서 쉽게 무르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싱싱한 새우젓을 잔뜩 넣어 굉장히 시원하기도 한 그 김치는 그래도 항상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맵지도, 싱겁지도, 짜지도, 달지도 않은 배추김치를 속에 알차게 들어찬 무와 함께 씹을 때면 입에 침이 고이면서 밥맛이 돌았다. 그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냉장고에 머물 때면 꽤나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지만, 그 맛 자체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했다.
그래서일까. 몸은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미 독립한지도 7년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난 엄마의 김치로부터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가끔 혼자서 김치를 담아볼까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엄마는 김치가 떨어지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렇게라도 홀로 생활에서 불연듯 찾아올지도 모르는 딸의 영양불균형을 막고 싶은 걸까. 30살이 훌쩍 넘은 자식의 냉장고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을, 혼자인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설명하기 어려운 껄끄러움 속에서 김치를 주고 받으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김치를 담가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엄마가 너무나도 되고 싶었던 엄마와 달리, 나는 엄마의 일평생을 보면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었다. 김치를 통해 엄마에게 애정을 받으면서도 그걸 묘하게 불편해하는 나는 상상속 엄마로서의 나를 떠올리면 어딘가 뒤틀려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건, 내가 엄마의 20대를 딛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김치를 담글 수 없었던 엄마, 살림이 어려웠던 엄마, 친구 하나 없던 엄마, 엄마가 없어 힘들었던 엄마, 그저 가족만 바라보고 살았던 엄마. 그 엄마의 유산 위에 내가 서있다. 가끔 그게 견딜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엄마의 김치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면서도,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김치를 담가줄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엄마에게 그 마음을 숨기고 평소와 다름 없이 말한다.
"엄마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
핸드폰 건너편에서 좋아하는 엄마의 기운을 느끼며, 이렇게 살아가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은 엄마의 딸로서 오래오래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