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2020),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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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인 ‘임계장’의 노동경험을 담은 책이다. 공기업 정규직으로 은퇴한 저자가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동질화되는 시급 노동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나이 든 노인의 과거 경력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저 군소리 없이 고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면 채용되고, 윗사람의 심기를 어지럽히거나 몸이 아프면 하루아침에 해고당한다. 쉽게 쓸 수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시급 노동자 인력풀에서 노인들은 위태로운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을 보면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불평등의 역사>를 보고 이 책을 읽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인류 역사상 불평등은 늘 존재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에서 정규직을 하던 저자에게도 삶이 녹록하지 않았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삶은 그러니까. 정규직이라고 해서 언제나 행복하지는 않았겠지. 책의 서두에 개인의 경제 상황을 개략적으로 써둔 저자는, 공기업 정규직으로도 살아가기 힘들었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제 더 이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에서 모든 문제가 기인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어떤 위기에 직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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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노동자인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 노년을 상상해보았다. 남성인 저자는 빌딩, 고속버스터미널, 아파트 경비를 하면서 최저시급을 받지만 나는 어떨까? 식당에서 일하게 될까? 사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나의 노년을 상상할 필요도 없다. <임계장 이야기>는 바로 내 부모의 이야기기도 하다. 아빠는 지금 오래된 아파트 경비로 24시간 격일 근무를 이어간 지 오래다. 이전에는 시에서 위탁해 운영하는 환경관리 업체에 소속된 미화원이기도 했다. 아빠는 그때도 쉽게 채용됐고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당했다. 정규직 공무원을 알아보지 못하고 차를 빼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임계장 이야기>는 그게 시급을 받는 노인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일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당했던 비인격적인 대우들이 나올 때마다 그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보았다. 완독한 뒤 책을 보니 정말 많은 부분이 접혀있었다.
내가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인데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짧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너무 모멸감 느껴지는 일인 것 같았다. 다시 앞에서 했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면, “우리는 모두 어떤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와닿았다. 이런 이야기는 도처에 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모서리를 접었던 그 페이지에 등장한 수많은 무례한 사람들은 ‘위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경비원이라고 함부로 저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은 다를 것이라고 확신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같은 인간으로서 타인을 그토록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건가?
사람들은 왜 경비원을 무시할까? ‘능력에 따른 소득 격차’의 신화를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경비원이 그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능력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이 땅의 많은 임계장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게 된다. 저자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정년퇴직을 했고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급 노동자의 세계에서는 의미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직하게 일한다. 그 세대의 마인드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임계장은 능력에 따라서 낮은 소득을 받는 게 아니다. 금융업계의 CEO들이 능력에 따라 배당받는 게 아니듯이. 이들은 일이 절실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받는다. 철저하게 시장의 공급과 수요 법칙에 따라서 말이다.
몸이 아파 7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저자는 여전히 그 노동현장에 있다. 이건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덧>>> 저자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난제다. 열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