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신랄해서 등골이 서늘한 글이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2021 겨울호에 실린 "동어 스님전(傳)"은 다른 어떤 글보다도 날카로웠다. "김영민의 먹물 누아르"라는 나름의 소개가 이 글이 풍자하려는 바를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그동안 칼럼으로 꽤 유명했다. 작년에는 칼럼을 모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책을 내기도 해서 한 번 읽어볼까 했지만 잊고 있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문학 파트에서 김영민 교수의 글을 읽게된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366756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말그대로 서평지이다. 편집부 구성원들을 보면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자가 주류를 이룬다. 논문 쓰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벅찰 사람들이 모여서 서평지를 만들다니. 그 부지런함에 감탄해서 정기구독을 시작했다.
이번에 실린 김영민 교수의 "동어 스님전(傳)"은 미국에서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돌아와 각종 학술회의에서 직설적인 화법과 도발적인 질문으로 동료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한 연구자의 이야기다. 연구자로서 뼈때리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등골이 서늘했다. 나를 돌아보게 했다고나 할까.
"왜 겸손을 떨죠? 겸손은 뛰어난 사람만이 떨 수 있는 거예요. 당신은 뛰어나지도 않는데 겸손을 떠네요. 당신이 뭐가 뛰어나죠? 당신이 어디가 뛰어난데? 도대체 어디가?"
"이 논문에 신자유주의라는 말 대신 '아웅'이라는 말을 넣어도 결론은 변하지 않네요. 그래도 되는 걸까요?"
"이 논문에 과연 주장이란 것이 있습니까?"
"논문이란 무엇인가?"
요즘 내 글이 가진 의미를 잘 모르겠다. 뭔가를 주장할 수 없게 된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엉망인 채로 먹고살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논문이란 대체 무엇인가. 학술적인 글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고.
주인공은 결국 정규직 교수가 되기는 한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그만두고 만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들도 그를 불편해 했다.
"개강이 다가오면 기쁘지 않나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니"
"연구자가 연구해야지 술 마실 시간이 어딨어요?"
하지만 교수자리를 버리면서 연인은 떠나갔고, 방황하던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출가를 한다. 동어 스님이 된 주인공은 불교계에서도 명성을 날린다. 동어반복으로.
"혁명은 혁명이다"
"쿠데타는 쿠데다다"
"체게바라는 체게바라다"
"돈부리는 돈부리다"
이 글에서 동어반복은 마치 엄청난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복잡한 학문의 세계를 떠난 동어 스님은 마치 해탈이라도 한 것 처럼 동어반복을 하고, 사람들은 이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신랄한 냉소주의가 글 전반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김영민 교수가 현재 학계를 바라보는 시각인 것일까?
다음주에 학술대회가 있는데, 왠지 겁이 난다. 글을 잘쓰고 싶은데 마음만 그렇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정말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