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니바람 Dec 24. 2019

#2. 교육부 사업, 나누기 14, 그래도

<지방대 박사 생존기>

<지방대 박사 생존기>     




#2. 교육부 사업, 나누기 14, 그래도 

  

연구자와 교육부 사업 

  

2013년 전업으로 석사학위 과정을 이어갔을 무렵, 나에게는 한 달에 80만 원 정도의 장학금이 주어졌다. 교육부의 BK21(Brain Korea 21)사업 덕분이었다. 우리 학과는 꽤 오랜 기간 동안 BK21사업에 참여하면서 많은 대학원생들을 육성해왔다. 많지는 않은 장학금이었지만 공부만 하는 삶에 있어서는 견딜만했다. 2014년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한 뒤에는 매달 100만 원 정도의 장학금을 받았고, 부수적으로 국제학술대회 참석이나 국내학술지 게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았다. 그 와중에 나는 별도로 교육부의 글로벌박사양성사업에 선정되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월 250만원의 장학금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공부하고 해외연구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교육부에서 기획한 ‘유일한’ 사업들에 운이 좋게도 모두 선정이 된 사례였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가능했다. 슬프지만 많은 대학원생들이 나처럼 운이 좋지 못하다.      


졸업을 하기 전인 5월 미리 취업한 사립대의 프로젝트 역시 교육부 지원사업이었다. 대학혁신지원사업. 그동안 교육부가 대학교를 지원해온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합해 2019년부터 대학혁신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ACE+(대학자율역량강화), CK(대학특성화), PRIME(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CORE(대학인문역량강화), WE-UP(여성공학인재양성)과 같은 기존 사업이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통합되었다.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여 대학 기본역량 강화 및 전략적 특성화를 지원하고 대학의 자율 혁신을 통해 국가 혁신 성장의 토대가 되는 미래형 창의 인재 양성 체제 구축을 지원”하는 것이 대학혁신지원사업의 목표이다. 나는 이렇게 2019년 막 시작된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일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2013년 10월 학부졸업 이후 가진 첫 직장에서 퇴사하고 거의 7년 만에 새로 가진, 박사졸업 이후의 첫 직장이었다.      


나누기 14?     


처음 이 일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내 연봉은 4000만원이었다. 한국연구재단의 국내 박사 후 연수가 연봉 33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꽤나 높은 수준이었다. 나는 의심했고 재차 물었다. 여러 번 물어도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졸업을 하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하게 될 일에 대해서도 크게 확신은 없었지만 연봉은 날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첫 출근 날. 계약서를 마주하면서 역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연봉은 34,200,000원 이었다. 20만원의 존재가 참으로 이상했다. 알 수 없는 20만원과 함께 내 연봉은 거의 600만원이 깎여져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다른 교육부 지원사업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상황을 전달해 상의했다. 나는 경험이 없었다. 계약 담당자를 만나 물었다. 제안 받은 연봉과 실제 계약할 연봉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담당자는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연봉의 액수를 실제로 입으로 뱉었던 나의 상사를 만나러 갔다. 상사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기획부처장은 그 액수가 맞다고만 했다. 홍보실장은 계약 담당 직원하고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이 사단이 난 출근 첫 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서명을 하지 않고 그만두어야할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소개받은 자리를 그렇게 박차고 나올 수는 없었다. 계약 담당 직원과 상의하고 확인한 끝에 계약서에 서명을 했지만 여전히 찝찝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월급은 세금을 제하고 250만원이 입금되었다. 다시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나에게 4대보험이 제해졌기 때문이라는 말만 했다. 그걸 내가 모르겠나. 인사를 담당하는 팀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팀장은 나에게 전화로 답을 주었고, 내가 출근한지 보름만에 들은 가장 확실한 답변이었다.

      

사실 그전에 추측을 하긴 했었다. 4000만원 안에 퇴직금, 사측에서 부담해야하는 4대보험이 모두 책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팀장은 이게 ‘교육부’ 지원사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인건비이기 때문에 4000만원 내에서 인력을 채용하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소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실제로 내 연봉은 3400만원이고 나머지 600만원은 기타 제비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누기 12를 할 연봉을 나에게 고지했어야 하는데, 나누기 14를 할 연봉을 알려준 것이었다.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어떤 사람도 연봉을 나누기 14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의 상사를 찾아가 따져야할까? 상사가 이정도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도 화가 났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연봉을 그렇게 대충 알고 있다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배는 이런 일을 일일이 말하는 것의 난처함에 대해 언급하며 그래도 조금 다녀보라고 조언했다. 노동자의 설움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선배는 졸업 이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해주며, 그래도 마음을 잡아보라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일단 이 자리라도 잡고 있자. 뿐만 아니라, 나의 박사학위논문과도 관련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한번 현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어떤 이론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과 원리를 관찰해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연구직은 아니었지만 기획을 통해서도 새로운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였다.  



작가의 이전글 #1. 졸업 이전의 취업, 비극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