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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Dec 17. 2019

#1. 졸업 이전의 취업, 비극의 시작

<지방대 박사 생존기>

<지방대 박사 생존기>     


프롤로그에서는 박사졸업생이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은 다소 비극적이다. 나는 실업급여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사직서를 던졌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이야기가 입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꽤나 자연스러운 전개다.     


이 취업은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물론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는 그 다양한 결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비극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나는 꽤나 꿋꿋한, 끈기와 인내심이 엄청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도 나름의 긍정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존기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만족감과 성취감이 엄청나게 뒤섞인 요상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1. 졸업 이전의 취업, 비극의 시작     


2019년 5월, 나는 갑자기 취업을 했다. 박사학위논문 1차 심사를 마친 시점이었다. 아직 2-3차 심사가 남아있던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진로가 정해진 것이다. 4월 15일 1차 심사를 끝내고 5월 20일 2차 심사를 앞둔 5월 2일, 나는 첫 출근을 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쉬웠다. 4월 말, 갑자기 평상시에 연락을 하지 않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이 소재한 지역에 위치한 사립대의 한 사업단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력서를 넣어보는 정도로 생각했지만, 선배는 일자리를 제안한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 집 근처 카페에서 그 대학 소속의 연구교수가 나를 만나러 왔다.     


직책은 객원교수. 출근은 5월부터 바로. 하는 일은 내가 연구했던 분야와 조금은 관계가 있었지만 망설여졌다. 무엇보다 박사졸업 이후 내가 생각했던 진로와는 달랐다. 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었지, 사업단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싶지 않았다. 입사한 뒤에야 알았지만, 이 사업단은 교육부에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각종 대학 지원사업을 하나로 통합해 구성한 대학혁신지원사업의 한 부분이었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간 것도 아닌, 이상한 형태의 대화자리에서 대학에서 나온 연구교수는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보통의 채용절차와는 다른 전개에 나는 그 당시의 대화가 면접인지, 직무에 대한 설명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고민할 시간은 딱 하루. 구인이 매우 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원래 일을 하기로 했던 사람이 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자리가 비어버린 것이었다. 당장 5월부터 사업은 시작되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 급한 상황이었다.      


많은 고민을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지도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기회가 생겼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상의 했다. 교수님은 내게 일단 일자리가 생겼으니 해보면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이직하면 된다고 조언을 하셨다. 나도 내심 그동안 연구했던 것들이 현실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관찰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시작은, 일하다가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지,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2013년 첫 직장에서 퇴사를 감행했을 때도 1년은 고민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생각은 그랬다. 물론 퇴사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또 깨닫게 되었지만.     


5월 2일 출근 첫날부터 나는 이 일을 계속해야할지, 그만두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어긋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어긋남을 애써 외면하며 마지막까지 달리다 터져버렸던 것 같다. 차라리 그 때 멈추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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