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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Dec 10. 2019

프롤로그

<지방대 박사 생존기>

<지방대 박사 생존기>  




# 프롤로그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모두 교수가 되지 않는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 교수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모든 사람들이 교수를 꿈꾸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누구에게서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교수 하려고?”라는, 앞서 언급한 측면과 다소 동떨어진 질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궁극적인 목표가 교수가 아니라면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인식의 반증이기도 하다. 동시에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는 이유가 교수가 되는 것으로만 한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교수라는 직업이 가진 명예와 권력, 이를 둘러싼 선망들을 보면 박사학위 취득이 가진 의미를 이렇게 협소하게만 받아들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각종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박사들의 모습은 한 결 같이 교수가 되지 못해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데 그쳤고, 교수가 되지 못한 이들은 마치 패배자처럼 묘사되어 왔다. 사회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이들은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안정적인 직업도 가지지 못한, 모든 측면에서 지연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박사 졸업생이 대학에 소속된 교수가 아니면 생계를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향은 이공계를 장려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인문사회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의 개인 연구비 지원은 그마저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1-5년 정도만 연구를 진행할 수 있고, 대학 산하의 연구소마저도 아무리 길어도 지원이 10년을 넘지 못한다. 인문사회분야의 박사 졸업생들에 대한 지원은 박사후국내연수와 학술연구교수 정도에 그쳐왔고, 연간 인건비이자 연구비는 3천 3백만원을 넘지 않는다. 여기에 퇴직금과 4대보험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월 수령액은 2백만원 초반에 불과하다. 추가 연구비 지원이 있는 학술연구교수의 경우에도 금액은 연간 6백만원에 그친다. 시간강사 연구비 지원은 1천 4백만원으로 여기에는 소속기관의 몫인 1백만원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는 1년에 1천 3백만원을 지원한다. 한국연구재단 이외에 간혹 사기업에서 학술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1~2년 정도만 가능한 단기지원들이다. 이러한 지원들은 안정적인 생계 기반이 될 수 없다. 그나마 사기업의 수요가 많은 이공계의 경우 이러한 연구비 이외에도 연구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가질 수 있지만 인문사회분야는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면 거의 사회에 스며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인문사회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 진학에는 저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취업을 미루기 위해, 또 어떤 사람들은 학위 취득을 통해 보다 나은 직업 기회를 가지기 위해,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현실적으로는 이와 같은 이유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저마다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분명히 있다. 


이 글은 인문사회분야의 연구를 지속하고 싶어 대학원에 입학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통 상상하는 박사 이후의 삶으로서 교수가 아닌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교수가 되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아닌 박사 이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낯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박사졸업생들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고 싶다. 무엇보다 박사졸업생들이 더 이상 대학 안에서 교수로서만 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직업경로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4월 발표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안)」에도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대목들이 눈에 띈다. 활성화 방안은 기존에 대학 내의 연구자만을 지원했던 기조에서 대학 밖의 연구자들을 고려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며, 인문사회분야의 사회적경제기업과 지역 인문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정책적인 진단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과학의 경우에도 서구학문중심, 영어권 출신 해외 박사 선호로 지역적 편중이 심하고 자생적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 위기”라는 대목이다. 많은 교수들이 해외 유학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인문사회분야도 예외는 없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박사졸업생들이 교수가 될 수 없다고 단념하는 현실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글의 또 다른 초점이 맞추어진다. 바로 지방대라는 특수한 지역적 맥락이다. 인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지방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나의 이야기는 서울대 혹은 해외대학 박사 졸업생이 교수를 꿈꾸는 자연스러운 경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방대, 그것도 인문사회분야 전공의 박사졸업생은 정책적,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꿈을 꾼다. 그 나름의 꿈이 한국사회의 기준에서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표준적인 경로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소수집단이 만들어낸 돌출된 샛길일지라도 그 길을 걷는 나에게는 분명히 어떤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그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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