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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soo Jun 21. 2022

조성진과 라흐마니노프

그리스 일상

나는 조성진을 사랑하는 걸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사랑하는 걸까. 런던 심포니와 노세다와 함께한 연주를 들으며 오랜만에 시간이 멈춘 경험을 했다. 무겁고 장엄한 피아노 타건으로 시작되어 현들이 만나 흐르는 첫 장면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사로잡아놓고 내내 놓아주지 않은 채 무섭게 끌어당기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꼼짝 못 하게 만들고 곡이 멈춘 후에야 한꺼번에 풀어준다. 극도의 낭만성과 서사력으로 듣는 사람을 완벽하게 홀려버리는 이 곡을 꼭 끌어안고 싶다.

 폭발하듯 넘쳐흐르는 숭고와 우아의 향연에 나는 취하고 갇힌다. 나의 시간은 멈춘다.

무정하리만큼 환한 한낮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희디 흰 구름. 조성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나는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멈춘 순간을 음미했다.

아침부터 분주했던 일정, 요란스러운 오토바이, 버스 엔진 소리, 집에 오자마자 바둥바둥거리며 흘렸던 땀, 같은 것들이 정말 가볍게 증발되어버렸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이 년 전, 깊은 새벽 작은 원룸에서 같은 연주를 들으며 꼼짝할 수 없었던 황홀경이 오늘 또다시, 그러나 조금은 다르게 재현된다. 다음번 조성진의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을 들을 때 나는 어떤 시공간에서 어떻게 사로잡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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