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comingsoo Nov 02. 2022

거리 시장의 제철 과일과 김치 담그기

그리스 일상

올해 11월 초 그리스 낮 기온 23도. 때로는 25도까지 오른다. 밖에 나갈 때 겉옷을 챙겨 입지만 얼마 되지 않아 벗게 된다. 햇빛은 여전히 눈부시다.

매주 화요일 거리 시장이 선다. 거리 시장은 집에서 3분 거리 정도 되는 가까운 길에서도 열리지만 규모가 좀 작아서 운동 삼아 20여분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거리 시장으로 간다. 규모도 아주 크다. 뜨거운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도착한 시장에는 단감, 홍시, 자두, 밤이 제철 과일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탱글탱글한 밤 1킬로, 단감과 홍시도 넉넉히 샀다. 짙은 보라색으로 안은 새빨간 자두도 몇 개 샀다.


오늘은 김치를 담그는 날이다. 어제 산 알배추 4개가 한국에서 배추 1포기 무게와 비슷해서 1포기 배추김치 만드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았다. 김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금에 절이고 씻어 물기를 빼고, 여러 가지 양념소를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지난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써도 맛있을까 말까 한 배추김치를 어영부영 따라 하며 오랜 시간 후에 겨우 마무리했다. 원래 한식은 잘 먹지 않았던 터라 김치가 굳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인데, 웬걸.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한식을 만들어 먹는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던 한국 음식을 그리스에 와서 하고 있다.


부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과일을 정리하고 김치를 담그는 긴 시간이 하나의 중요한 예식처럼 치러졌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 사이사이 정리와 치우기를 반복한다. 김치 양념을 만들었던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좁은 개수대에 놓으며 ‘나는 너를 정성스럽게 대해 주겠다’는 듯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닦았다. 김치를 담갔다는 무수한 흔적들을 지닌 채반, 계량컵, 믹서볼, 냄비 등등을 차례차례 씻으며 오늘도 살기 위한 예식을 거하게 치렀다.


  

작가의 이전글 마침내 <헤어질 결심> 각본집을 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