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일상 250312

스티븐 샤비로, <기준 없이>, 2024.

by becomingsoo

책을 읽다 보면 굉장한 행운을 만날 때가 가끔 찾아온다.

오랜 기간의 독서 인생이 가져다준 안목이나 내용의 탁월성과는 별개로, 읽기 시작했을 때 ‘쑤욱’ 들어가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술술’ 읽힌다는 느낌과는 다르지만 읽기에 들어간 이후 다음 장에 도달할 때까지 별 무리 없이 책장이 넘겨지는 책이 있다. 좋아하는 주제여서 읽기를 시작했다가 문체나 어휘 배치가 너무 어렵다던지 나의 읽기와는 스타일(?)이 잘 안 맞아서 책장이 잘 안 넘겨지는 책들이 있는데 그런 와중에 이런 책을 만나면 아주 반갑고 행운을 만난 것 같다.


책을 구매하면 받자마자 서문까지는 읽는다. 보통 3-4권, 많으면 5-6권의 책을 번갈아 읽는 편인데 그중에 서문을 넘어 곧바로 다음 장까지 넘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루 이틀 있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대부분이고, 어떤 책은 서문만 읽고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가 몇 달 만에 다시 꺼내 들어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한다.


스티븐 샤비로의 <기준 없이>는 작년에 한국에 없을 때 동생 집으로 배송받은 책이다. 요즘 책들 몇 권을 뒤적이다가 재미가 없어서 쌓여있는 책더미를 뒤지다가 맨 아래 깔려있는 걸 꺼내 들었다.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미학에 대한 책인데 여기서도 늘 걸림돌은 칸트이다.

몇 달 전 <들뢰즈와 칸트>를 읽으면서도 칸트 철학의 난해함 때문에 외면하고 싶은 걸 억지로 공부하듯 읽었던 기억이 채 사라지지 않았는데 <기준 없이>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옛날부터 칸트는 좀 넘어가고 싶었지만 늘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기꺼이 칸트를 대면해도 괜찮다고 느껴질 만큼 ‘쑤욱’ 들어가게 되는 책이다.

오늘 마음에 든 문장은,

“비판적 글쓰기는 언제나 변형의 경험이어야 한다.” 22.

이를 대변하여 이어지는 푸코의 인용문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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