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일상
아라호바에 가고 싶어서 전날 인터넷으로 버스표를 예매했다. 아테네 버스터미널에서 델피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2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다. 중간 휴게소를 들른 후 십 분쯤 지나 버스는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델피 지역 특유의 신비로운 산등성이가 보이면 그 옆으로 호젓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나타난다. 다홍색 기와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새가 이 지역의 돌산과 조화를 이루어 아기자기한 풍경을 이루어낸다.
델피까지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라호바에서는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인과 나만 내렸다. 마을이 크지 않아 중앙도로를 중심으로 마을 초입에서 끝까지 걸어도 체감상 20분이 채 안 걸리는 것 같다. 주말에 내린 비 덕분에 요 근래 바람이 시원하다. 6월 말 한낮에 걸어 다녀도 괜찮을 만큼 바람이 선선하다.
아라호바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아라호바의 겨울, 벽난로에서 태우던 장작소리와 냄새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벽난로를 타고 천장을 따라 장식된 나무 인테리어도, 발코니에서 바라본 해질녘 시계탑 풍경과 밤하늘 새초롬히 떠 있던 초승달의 맵시까지 하나 둘 천천히 생각이 난다.
두 번째 이곳에 왔을 때 기억나는 것은 고양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야외테라스가 넓었던 식당에서 만난 새하얀 오드아이 고양이. 오늘도 혹시 만날까 싶어 같은 식당에 갔었다.
그러고 보니 카페도 같은 카페다. 들어와 보니 같은 장소다. 멋진 전망과 화분에 심긴 앙증맞은 꽃들이 정겹다. 시계탑 풍경과 함께 프레도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다.
항상 떠나기 전이 문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가기로 했다. 잘 왔다는 생각이다.
가다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가는 이 단순한 움직임에 의외로 크나큰 자유를 느낀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나는 오늘의 아라호바를 어떻게 기억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