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일상

그리스 일상

by becomingsoo

용어의 개념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읽기에 쫙쫙 속도가 붙는다. 하나의 책을 읽기 위해 선행될 수밖에 없는 개념 파악 때문에 매번 국어사전과 개념어 사전을 옆에 두고 검색하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내 안에 오롯이, 끈적하게, 고맙게 달라붙어 있었구나.


읽기는 배신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면서, 읽다 보면 구부정한 자세가 돼버리는 걸 알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며 연필심이 닳아가는 과정을 구경하는 건 나름 소소한 볼거리이고,

책의 한 챕터가 끝날 때까지 몇 장이 남았나를 세어보는 건 읽기의 리듬을 타는 데 도움이 된다.


책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이 중요한 예시로 자주 등장했다. 흑백사진으로 실려있었는데 그 작품을 직접 보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테네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 있었다.


지독하게 뜨겁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하게 바뀌어서 이때다 싶어 길을 나섰다. 보고 싶었던 작품을 직접 만난 감흥에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그곳에는 내로라하는 인상주의와 입체파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데 모여있어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자코메티의 조각품에서 처연함과 강인함을,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이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것에서 아련함을 느꼈다.


요 며칠 시원한 바람이 불고 기온도 조금 내려갔다. 한낮에 에어컨이 없어도 괜찮은 날씨다.

읽기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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