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탄생

읽기 일상

by becomingsoo

아침에 일어나서 일상의 몇 가지 루틴을 수행하면서 늘 오디오북을 듣는다. 짧게는 한 시간 반, 길게는 세 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세수를 하고 빨래를 너는 등의 생활 동작 속에 오디오북을 듣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고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에 그 안에서 한껏 자유롭다.


그런데 오디오북으로 들을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실물 책을 읽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읽기가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 주로 읽는 책은 인문학, 철학 분야 책이어서 밑줄을 쳐 가며 읽고, 읽다가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읽기 사이사이에 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디오북은 그 틈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난해한 내용의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기 어렵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는 습관적으로 오디오북을 듣는 것을 독서로 생각하지 않는다. 거의 매일 아침 상당한 시간 동안 오디오북을 들으면서도 ‘아, 요즘에는 책을 전혀 안 읽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오북 서비스앱에서 책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다. 평소 나의 독서 성향에서는 읽고 싶은 책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쉽게 주문한다. 하지만 오디오북에서는 평소 성향대로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일상 루틴 속에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기 때문에 무엇을 골라 들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망설일 때가 많다.


대중성을 고려하는 전자책 서비스 앱이 가진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한계도 있겠지만, 평소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려니 더더욱 뭘 골라 들어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설이다. 평소의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소설은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게 전부일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그 이후로 소설을 읽은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최근의 국내 소설 작가들을 잘 모른다.


처음에는 외국 유명 작가들의 유명 소설들을 듣기 시작했고, 화사한 일러스트 표지 일색으로 아류가 판을 치는 비슷한 내용의 소설들도 몇 권 들어봤다. 추리 소설, 가벼운 인문서적 같은 것들도 들었다.

어제 아침에 그동안 듣던 추리소설 한 권을 끝내고 오늘 아침에 ‘이제 또 뭘 읽어야 하나’ 시간이 돌아왔다. 선택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소설집을 고르게 됐다.


그리고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그가 선택하고 풀어내는 모든 단어와 문장에 어느 것 하나 거스름 없이 내 귀에, 머리에, 가슴에 스며들었다.


담백하고 우아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극히 일상의 언어로 소담하고 품위 있게 그려낸다.


아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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