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낮 최고기온 38도. 건식사우나와 다름없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
한국의 겨울이 삼한 사온이라는 리듬이 있듯이 이곳의 여름도 3-4일 간격으로 더위의 정도가 바뀌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삼 사일 정도는 바람도 없이 덥다가 이후 삼 사일정도는 바람이 좀 불면서 기온도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다. 아니면 너무 더워서 그러기를 바라는 나의 망상일 수도 있고.
열풍이 부는 뜨거운 날이면 해가 지고 난 뒤에도 열대야는 계속된다. 건조하기 때문에 밤에는 보통 창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데 바람 없이 뜨거운 날이 계속되면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다.
그리스의 모든 집 창문에는 덧문이 필수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덧문을 닫지 않으면 햇빛이 온 집안을 매워 한증막이 될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서 한낮에 외출은 어렵다. 공공기관들은 대게 오후 2시에 문을 닫고 일반 상점들도 2시까지 영업하고 이후 3-4시간 동안은 문을 닫았다가 5-6시쯤 다시 영업한다. 최근에는 이상기후 때문에 더 더워져서 아크로폴리스도 오후 2-7시까지 관광객 입장을 금지시켰다.
7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저녁을 먹고 해가 지고 난 후에 걷는다. 거의 9시가 되어서야 해가 떨어지고 해 지기 직전까지도 햇살이 강하긴 하지만 해가 많이 기울어진 터라 그늘진 곳이 많아진다.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 겸 산책을 하는데 요즘같이 더운 날은 저녁이 아니면 걷기는 불가능하다. 몇 년 전 데살로니키에서 경험한 43도의 날씨는 잠시도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요즘 같은 날씨는 매우 전형적인 그리스의 여름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7-8월에 길게 쉬고 온종일 바다에 있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녁 산책을 하면 매일 다른 해 질 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색을 보다 보면 알 수 없는 충만함이 깃든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 바깥 풍경이 통창 가득 들어와 온종일 방을 비추는 그리스의 여름. 아무것도 안 하고자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나른함과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 사이 어딘가에서, 그래도 하루하루 나다워지고 있다고 되뇌며 이 여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