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기
7월 14일 읽기와 앉기 사이에서
서서 책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볼 수야 있겠지만 오랜 시간 지속할 순 없다. 그래서 앉기와 읽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 마냥 앉아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구부정해지기 때문에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는 순간 읽기는 멈춰진다.
지속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7월 16일 summer breeze
선우정아의 새 앨범이 나왔다. 오늘같이 더운 바람이 부는 날에 나름 어울린다.
곧 있으면 쓰러질 것 같이 기울어져버린 키 큰 책선반에 있던 책들을 모두 꺼내어 침대 옆 라디에이터 위에 쌓아두었다. 책장에 계속 꽂아두다가는 언제 그들이 나를 덮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텅 빈 선반에는 수년 전 박사논문 쓸 때 조카가 만들어 준 가모라 피규어('힘내'라는 쓴 메모가 붙어있는)와 강아지 모양 자석 메모꽂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리스의 건조하고 강렬한 햇빛을 받아 노랗게 바짝 마른 책들의 단면이 곧 있으면 바스러질 것처럼 보인다. 말라가고 있는 책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고 펼쳤다. 총 3장으로 구성된 해러웨이의 책인데 그중 첫 번째 장은 이미 읽었나 보다. 기억에도 없는 밑줄이 성실하게 쳐져 있다. 이런 경우는 일상다반사여서 그럴 때는 보통 처음부터 다시 읽는데 이번에는 과감히 다음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7월 21일 바라. 보기.
"핵심은 타자나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항상 질문하는 것이다."(해러웨이 선언문_반려종 선언, 177.)
책의 맥락과 상관없이-혹은 상관있게-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와 관계되어 있는 것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들 사이의 역동을 알아채는 예민함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마주치는 반복적인 일상과 관계들 속에서 새롭게, 다르게 출현하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매 순간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그 순간들의 출현에 감탄하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