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하는 읽기 여정

읽는 일상

by becomingsoo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쉽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에너지를 써야만 되어지는 '일'로 변해간다. 그리고 점점 그 가짓수가 늘어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게 그때는 쉬웠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


그런 것들을 하나 둘 인지할 때마다 아주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또 이내, 그것이 지금의 나인 것을. 하고 받아들이기로.


읽은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건 '일'처럼 느껴져도 계속하면 또 좋아지지 않겠나.


실물 책으로, 오디오북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들춰보고, 들으며 지난 몇 달을 보냈는데 무엇을 읽었는지 어디가 좋았는지는 정리가 안 되어 있다. 도서앱에서 구매한 목록을 살펴보고, 도서관 앱에서 대출기록을 찾아보고, 전자책 구독서비스 앱을 열어 나의 독서기록을 찾아보면 대략적인 독서 여정을 알 수 있을 테지만 뒤죽박죽 된 독서여정의 정돈된 기록은 아직이다.


책을 사고 나서 얼마나 묵혀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책 중에 하나를 집어 여행가방에 쑤셔 놓고 이곳에 온 지 열흘이 지나서야 책을 펼쳤다.


"나는 밑줄을 그어 가며 책을 읽는다." 26.

첫 문장을 읽으며 '나랑 같은 사람이네' 했고,

"나는 언제나 볼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눈에 들어온 문장에 선을 죽 긋는다." 26.

아, 나는 연필인데. 했다.

"그럴 땐 페이지 아래 귀퉁이를 작은 세모로 접어 둔다." 27.

오, 나는 위 귀퉁이를 접는데. 했다.


읽는 종족이 가진 유사성에 친밀함을 느끼며 저자의 성정이 오롯이 베어나는 문장들을 쓰다듬으며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갔다.


예전처럼 폭풍 같은 읽기는 아니지만 띄엄띄엄, 가끔씩

한 챕터를, 한 장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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