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무반(주택)의 부엌은 실내와 실외로 나뉜다. 아마 전통적으로 부엌은 밖에 있었지만 최근 실내로 배치하는 구조로 바뀌는 듯하다. 외식을 많이 하는 태국 특성상 더운 날씨에 불을 지펴 실내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필요가 없기에 요리보다는 간단한 조리 공간이란 표현이 적당하다.
지금 살고 있는 무반도 실외와 실내 두 곳 다 간단한 싱크와 조리대가 있다. 하지만 굳이 덥고 벌레가 득실대는 실외 주방에서 요리를 할마음은 전혀 없기에 세탁실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 실외 주방 담벼락 뒤로는 문제의 연못이 이웃한다. 물 위에는 이끼로 가득 차 겉으로 보면 사실 이게 연못인지. 늪인지 인공저수지인지 알 수 없다. 며칠 전 이 연못에서 왕 도마뱀이 한가롭게 수영하고 있는 것을 본 이후로 연못을 향한 불안한 눈빛과 경계심이 극에 달해있었다.
담만 넘으면 왕 도마뱀이 실외 주방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 물론 담 위로 방충망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본 왕도마뱀의 크기로 봤을 때 그것까지 뚫고 들어올 수 있어 보였다.
그날 오후, 실외 주방에서 큰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순간 머릿속에 왕 도마뱀이 떠올라 밖을 쳐다보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1미터 길이의 거대한 도마뱀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혀를 날름 거리며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놈도 당황했는지 구석자리를 찾아 숨어 들어가느라 바빴다. 순간 머릿속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놈의 동태를 살피기 정신없었다.
다행히 아내가 급히 집주인과 연락을 해 무반 내 관리사무소 직원을 불러 주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새까맣고 작은 키에 순박해 보이는 현지인 관리직원 2명이 하얀 건치를 들어내며 웃으며 서있었다. 덤 앤 더머처럼 보이던 그 시골청년들이 왜 이리 용감하고 듬직해 보이던지.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듯 왕도마뱀이 숨어있는 물탱크 뒤로 팔을 쑥 집어넣어 금세 잡아서 나가버린다. 어디서 들어왔을까. 방충망도 그대로고 분명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는데 도대체 알 수 없으니 더 두려워진다.
그날 저녁. 아내와 나는 워낙 놀란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있었다. 음식, 문화, 환경, 위생 등 어느 하나도 익숙하지 않다. 태국의 첫날, 한국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그 이상으로 이루어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태국의 자연 앞에 기세가 완전히 눌려버렸다.
이제는 문만 열면 왕도마뱀이 음침하게 숨어서 일격을 노리고 있을 것만 같다. 멘붕상태. 원상태로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낯선 곳에서 이렇게 까지 지내야 하는 걸까? 그냥 무사히 잘 돌아가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무기력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