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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한국이 그리울 때 삼겹살

살림남의 방콕 일기 (#104)

by 김자신감


해외생활을 부러워하는 지인의 연락은 때때로 당황하게 만든다. 치열한 한국생활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낭만 따위를 논할 여유가 없다. 이런 사실을 애써 설명하기도 아무 의미 없기에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한동안 밀려오는 갑갑함을 혼자 속으로 삼켜야 한다. 여름만 계속되는 기후, 떨어지는 입맛으로 체력은 항상 축 쳐져 있으며 시간 개념도 무뎌져 홀로 뒤처지는 외톨이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우울함이 온몸을 휘감을 때 가장 효과 있는 처방전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태국음식이 생존을 위한 도전이었다면 한식은 회복을 위한 보약이다. 태국에는 다양한 한국음식이 있지만 음식 안에는 태국의 향이 숨어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방콕 도심과 달리 외곽에는 제대로 된 한식당을 찾기 어렵다. 저녁 한 끼를 위해 먼 도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없기에 가장 대중적이고 한국적인 음식을 고민한 결과 호불호가 없는 삼겹살을 외식 메뉴로 정했다.


다행히 집 근처 한국식 바비큐 음식점이 떠올랐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 안,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고기뷔페가 위치한다. 1인 약 340밧(13,000원)에 삼겹살, 목살, 등심, 주물럭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삼겹살과 어울리는 무절임, 무생채, 양파초절임, 쌈장, 마늘, 고추 등 등 반찬까지 한국식 삼겹살 집에 들어온 듯하다. 삼겹살을 구워 쌈만 싸 먹어도 입안 가득 한국의 고소함이 태국 고수향을 채울 공간이 없다.


특히 가스레인지로 굽는 삼겹살이 아닌 숯불에 구워 먹는 두툼한 삼겹살은 식감만으로 우울한 감정을 씹어 삼키기 충분하다. 외진 골목의 삼겹살집에 태국인 손님들이 한 테이블씩 들어찬다. 낯선 태국어만이 이곳이 태국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한국에서 평범한 것들이 태국에서는 귀하게 느껴진다. 불판 위 긴 자바라 환풍기를 조절해 가며 집게로 잘 구워진 고기를 한입 가득 찰 크기로 잘라낼 새도 없이 고기는 아이들 입으로 사라져 버린다.


모두 한국이 그리웠는지 말도 없이 숯불향 가득한 삼겹살에 구워진 마늘, 풋고추, 쌈장을 올려 한쌈을 만든다. 예전에는 쌈을 싸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한국인의 본능처럼 스스로 정성스레 입에 맞는 크기의 쌈을 만들고 뿌듯해한다. 큰아이는 바비큐의 마무리는 된장찌개라며 공깃밥과 함께 제대로 삼겹살 정식을 해치우며 역시 한국음식 최고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온 외진 골목, 가로등 하나 없어 더욱 어둡지만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가게의 숯불 연기가 백열등 빛 사이로 퍼져 태국 속 향수를 진하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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