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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May 23. 2023

태국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맛

살림남의 방콕 일기 (#125)


태국의 집은 고층 건물인 콘도와 저층 건물인 무반으로 나뉜다. 무반은 일반적으로 여러 채를 묶어 단지로 구성되며 단독형과 연립형으로 구분한다. 단독형은 일반적인 단독주택으로 조그만 마당이 딸린 1, 2층 독채건물이며, 연립형도 1층에 거실과 주방이 2층에 침실과 화장실로 비슷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옆집과 벽을 공유한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좁은 전면에 긴 측면을 가진 연립형 소형 무반단지이다.


자라는 아이들에 비해 집은 그대로니 상대적으로 집이 더 좁아진다. 가져온 짐이라고는 아이들 책뿐이지만 책을 놓을 책장도 비좁게 느껴진다. 폭 5m, 길이 5m의 거실에 4명이 함께 지다 보니 공간적인 간섭으로 프라이버시마저 침해받는 느낌이다. 특히 아이들은 서로의 공간에 선을 넘지 마라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자주 벌인다. 이사까지 고려해 보았지만 몇 달 새 급격히 늘어난 방콕의 여행자와 일자리 수요로 주변지역의 집도 없을뿐더러 렌트비도 많이 올라 부담스럽다. 지역을 옮기고 싶지만 아이들 통학 문제가 걸리고, 아이들 학교를 옮길려니 아이들이 반대한다.


다시 원점, 어수선한 거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온 가족이 앉아 업무와 공부하는 기다란 접이식 탁자 겸 책상, 공부욕심에 가져온 활용도 낮은 책들이 꽂힌 채 가로로 누워있는 기다란 책장, 연주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인 전자피아노를 올린 책상, 아이들이 한쪽씩 자리를 차지하고 게임을 즐기는 폭 1m와 너비 3m의 골리앗 소파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렇게 놓여 있던 가구들을 재배치한다면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먼저 가장 불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의 게임용 소파를 계단 밑 창고로 넣기로 한다. 거대한 소파를 들어내니 그동안 개미약 훔쳐먹던 집도마뱀이 집을 잃어 당황한 듯 갈팡질팡하는 사이 아내에게 붙잡혀 집 밖으로 내쳐져 버렸다.


외양간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늙은 소를 잡아끌듯 창고 입구에서 소파와 한참을 실랑이한다. 좁은 집에 왜 이리 침대 같은 소파를 놓았는지 계단 밑 창고에 도무지 들어가지 않는다. 2층 큰방으로 장소를 변경하여 겨우 한 명이 통과할 만한 2층 계단 통로로 온 가족이 관짝 같은 소파를 둘러메고 침대 옆 공간을 창고 삼아 올려두었다. 힘들다는 투정도 잠시 확 넓어진 공간에 아이들도 기쁜 모양이다.


남색의 남루한 골리앗 소파가 빠지니 칙칙하던 거실이 넓고 밝아진다. 기세를 몰아 거실 정면 창문 벽면 아래 게으르게 길게 누워있던 복잡한 책장도 좌측 현관 벽 세로로 세워두니 죽어있던 공간이 살아난다. 잡다한 액세서리를 세워두었던 2개의 선반에는 먼지 쌓인 전자피아노와 노트북을 각각 올려두고 1인 스탠딩 책상으로 꾸며본다. 전자피아노가 올려져 있던 책상은 1인 공부 책상으로, 기다란 4인용 탁자 겸 책상은 2~3인으로 분산시켰다.


미니멀하게 살기 위해 미니멀한 집을 구했지만 미니멀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생활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가족이지만 각자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로 세로 5m 정사각형의 좁은 거실 4명이 중심각으로 모이니 밀도가 높아져 숨마저 불편했지만 끝 모서리로 떨어지이제야 살듯 편안하다.


작은 점들이 이어져 선을 이루고 선이 그려져 공간을 만든다. 정사각형 모서리에 각각 아빠, 엄마, 큰아이, 작은아이 한 점으로 위치해 선으로 이어져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룬다. 하지만 각 점들 사이에 공간이 있듯 가족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경계가 필요한 법, 역시 좁은 집에서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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