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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May 24. 2023

태국 방콕,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

살림남의 방콕 일기 (#126)


태국에 지내면서 영화를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태국 영화 마니아 또는 영화 시리즈물의 광팬 외에는 딱히 없을 것이다. 결혼 후 영화를 즐겨보지 못했지만 주제가 우주와 연관되어 있다면 영화관을 반드시 찾는다. 특히 우주의 광활함 속에 느껴지는 고립, 고독, 공허한 분위기를 좋아해 TV나 휴대용 단말기보다 제대로 몰입할  있는 영화관을 이용한다.


우주의 공허함은 좋지만 영화관의 공허함은 싫다. 함께 관람할 만만한 동반자는 아내지만 그녀는 어둡고 숨 막히는 우주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동경하는 큰아이에게 제다이의 X윙 전투기보다 더  멋진 마블의 거대한 우주선을 보러 가자는 말로 현혹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태국의 극장은 시네플렉스라는 대형 극장 체인이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 한국의 극장과 유사하게 약 10여 개의 상영관으로 구성된다. 가격은 일반석, 프리미엄석, 2인 커플석 등 좌석에 따라, 상영시간에 따라, 해외 또는 국내 영화에 따라 차이 난다. 결제는 카드, QR스캔, 현금으로 가능하나 현금 구입 시 소정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비용은 300밧(1만 2천 원)으로 태국 서민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가격이 아니기에 상영관의 좌석은 항상 여유가 있으며 주 관람객은 외국인이거나 태국의 중산층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영화에 빠져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부산 남포동 극장가에서 영화를 보고 인근 국제시장에서 떡볶이사 먹었던 행복한 추억떠오른다. 모든 것이 부족했 어린 시절 만화방과 극장은 편식 없이 사춘기 소년에게 부한 상상력과 눈가촉촉 감수성을 채워주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힘들게 극장에 가지 않아도 넘쳐나는 콘텐츠로 원하는 것만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목마름이나 갈증을 느낄 수 있을까. 과거의 향수를 아이에게 전달해주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영화 시작시간 보다 15분 일찍 들어왔지만 좌석은 텅 비어 있다. 분명 좌석을 선택할 때 절반 넘게 표가 예매되어 있었지만 이상하게 허전하다. 상영 예정 시간 30분이 지나도록 광고만 나올 뿐 영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게 40분이 흘렀을까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들어차니 지긋지긋한 광고도 끝나려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국왕에 대한 노래가 나올 때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경의를 표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잔뜩 기대했던 영화였지만 기다림에 지쳤는지, 집중력과 감수성이 예전만 못한 건지, 영어를 못 알아들은 건지 중간중간 졸고 말았다. 반면  큰아이는 팝콘을 끝까지 먹지도 못한 채 영화에 몰입하며 환호한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겨우 흘러 자막이 올라와도 다들 감동에 빠졌는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막마저 사라지니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선다. 큰아이는 기대만큼 재미있었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8밧 버스 안에서 영화 스토리를 곱씹어 댄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친구와 일주일 전에 약속하고 영화 상영 전 3~4시간 전에 가서 긴 줄을 서서 영화표를 예매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보았던 귀한 영화이기에 피곤할 새도 없이 영화는 금방 끝나버렸고 그 아쉬움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까지 친구들과 영화얘기를 해대던 그때가 떠오른다. 영화의 재미는 극장 속 기다림에 있다. 흐릿한 과거와는 달리 선명하고 빠른 디지털 콘텐츠 속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극장 속 영화는 어릴 적 아날로그 감성을 기다리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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