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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06. 2023

태국 치앙라이, 차밭의 비밀

살림남의 방콕 일기 (#161)


"치앙라이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곳은 "차밭"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녹색 차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은 아름다운 윈도 배경화면과 같아 나이불문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차밭의 천국 같은 풍경을 감탄하고 길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전망대 겸 카페와 마주한다. 평일에도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추이퐁 차밭 카페는 동서남북 창문이 열려있어 어디서나 풍경이 조망가능하고 사방팔방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찻잎향에 젖어 은은하다. 이런 멋진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괜스레 부러워진다.


차밭에서 재배하는 녹차로 만든 마차라테와 우롱잎을 우려 만든 우롱아이스티가 대표메뉴, 디저트는 녹차로 만든 생크림 롤과 녹차무스 케이크가 인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음료는 미리 만들어 놓고 판매하지만 회전율이 높아 신선하다. 가격은 음료 70~80밧(3,000원), 디저트는 120~150밧(6,000원)대로 치앙라이 물가대비 비싸지만 여행지 물가대비 수용할만하다.


일조량이 높고 일교차 큰 치앙라이 기후는 고품질 차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황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카페에서 차밭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통로도 만들어 여행객들이 저마다 소중한 사진을 즐겁게 찍고 있다. 차밭고랑사이에서 찍는 사진은 SNS단골 포즈. 하지만 잠시 서있을 뿐인데 흐르는 땀도 말라버릴 만큼 따가워 고역이다.


다들 서둘러 사진만 찍고 다시 카페 안 그늘로 뛰어 올라오기 바쁘다. 멀리서 보면 천국의 풍경이었지만 그늘 하나 없는 키 작은 차나무 고랑은 열기로 갇혀있어 지옥이 따로 없다. 멀러서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 이렇게 예쁜 풍경을 하루종일 눈에 담고 가리라 마음먹었지만 1시간도 안되어 풍경이 익숙해지니 지겨워진다. 평화롭고 고요한 차밭이 금세 변화 없고 적막한 사막처럼 변해버렸다.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전망을 뒤로하고 좋았던 감흥마저 잊어버릴까 서둘러 카페에서 나왔다. 나무 그늘 아래 주차해 놓았지만 에어컨을 한참 틀어놓은 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차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풍경은 어느새 지루함을 던지고 다시 새롭게 주워 담기 바쁘다. 그때 무언가 차밭 사이로 작고 까만 점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차밭, 걸어서 가기도 힘든 거리지만 소수민족 아낙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찻잎을 따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알록달록한 긴소매자락과 더워 보이는 검은색 옷은 방심한 나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들이 받는 노동의 대가는 내가 마신 차와 케이크 값도 안 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카페에서 시원하게 마셨던 진한 마차라테보다 더 진한 애잔함이 몸을 굳게 만든 것이다.


이제는 "치앙라이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보다 "치앙라이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차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적이 없어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리라. 언젠가 치앙라이 차밭을 다시 방문한다면 가장 비싼 음료와 디저트를 겸손하게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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