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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방콕 야시장 가는 길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 맛 (#8)

by 김자신감


조용하고 한가로운 늦은 토요일 오후, 큰아이에게 "야시장이나 같이 가볼까?"라고 의미 없이 물었더니 선뜻 큰아이가 "네 그래요."란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나와 같은 집돌이인 큰아이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면 이곳 태국에 와서 한국에서보다 많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방콕의 야시장은 보통 오후 4시부터 문을 열기에 오후 5시경 시골 읍내 장터에 가듯 편안한 복장으로 느지막이 집을 나선다. 하늘 저 멀리서 먹구름과 바람이 불어오니 저녁에는 틀림없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영국도 그렇지만 태국에서도 비를 맞을 생각으로 외출을 해야 한다. 슬리퍼와 반바지, 헐렁한 티셔츠, 우산 하나면 준비 완료


15분을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오니 토요일 저녁이라 거리에는 차가 많이 밀린다. 엄청난 소음과 매연을 뿜는 트럭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 안전벨트도 없는 썽태우, 세발로 가는 뚝뚝, 그 사이에 포르셰 등의 고급차들의 질주 등 태국의 다양하고 신기한 도로 풍경에 압도당한 모양이다.


텅 빈 버스정류장에서 태국 버스를 처음 타는 큰아이는 막상 두려운지 "잘 갈 수 있겠죠?" 물어온다. 다행히 한 태국 아주머니가 우리 옆에 같이 버스를 기다리니 "저 아주머니도 같이 타고 갈 거야."란 말에 안심한다.


이렇게 버스정류장에서 20분을 기다렸을까? 에어컨이 없는 오래된 버스가 털털 거리며 달려온다. 큰아이 나이보다도 오래 달렸을 버스, 이런 버스가 움직인 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 한참을 버스 안을 둘러본다.


그렇게 20분을 달렸을까. 무사히 야시장 앞 정류장에 하차했다. 태국에서는 오토바이가 많기 때문에 버스 하차 시 항상 좌우를 살피고 조심히 내려야 한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어차피 비를 맞을 생각으로 나온 터라 준비한 우산을 펴고 야시장으로 걸어간다.


저녁 6시, 이제 야시장의 점포들이 하나씩 돌아와 불을 밝힌다. 이곳 야시장은 음식골목과 옷 골목으로 나뉜다. 큰아이의 목적은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 하지만 길거리 음식의 위생이 신경 쓰이는 터라 그나마 가장 먹기 간편하고 조리과정이 단순한 꼬치만 맛을 보기로 했다.


갑자기 강해지는 비, 비를 피해 모인 사람들과 비를 막을 천막을 치는 상인들로 야시장은 어수선하다. 결국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인근 쇼핑몰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애피타이저로 원하는 꼬치구이는 다 맛본 터라 이제는 뜨뜻한 국물이 생각난다. 비도 오고 뭔가 든든한 국밥이 생각나지만 아쉬운 대로 돈코츠 라멘으로 허전함을 대신한다.


다행히 비는 그쳐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도착하니, 눈썰미가 좋은 큰아이가 출발할 때 만났던 태국 아주머니가 정류장에 서있다고 살짝 귀띔으로 알려준다. 나는 주위에 변화에 관심이 없어 사람을 잘 기억 못 하지만 큰아이는 작은 변화를 유심히 살펴 기억해 낸다. 작은 우연이 만들어준 재미있는 추억. 아주머니와 처음 만난 정류장에서 그렇게 다시 헤어졌다.


저녁 9시.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좁고 어둡다. 밤이 되니 수풀 속에 숨어있는 새와 도마뱀의 작은 움직임들, 친구들을 부르며 하나둘 모이는 들개들, 천천히 길을 가로지르던 다리 짧은 두꺼비, 알 수 없는 어둠 속 두려운 길이지만 큰아이와 함께라니 든든하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 자립심을 키우고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겠지. 방콕의 8월 어느 밤 큰아이와 짧은 일탈이 서로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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