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창문과 문틈을 다 막았음에도 도마뱀들은 기를 쓰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어두운 저녁이 오기 전 좀비를 피해 창문의 빛을 막으려 틈을 막는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 끝에 중지 정도의 어른 도마뱀은 들어오지 못하고 새끼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새끼 도마뱀만 가끔보인다.
이곳의 도마뱀은 몸에 비해 발이 큰 게코도마뱀 종류로 미끄러운 타일에서는 빙판길에 헛도는 자동차처럼 헤매지만, 벽에서는 스파이더 맨처럼 나는 듯기어 다닌다.파리채를 이용해 잡아볼까 하지만 해충과 달리 너무 잔인하다.
게코들은 꼭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레기 통을 비우려고 비닐을 빼는 순간 게코가 튀어 올라쓰레기봉투를 공중에 던져 버린 일. (흐트러진 쓰레기를 다시 담아야 하는 수고는 덤이다.)
또, 침대를 정리하다 베개를 드는순간 숨어있던 게코가 튀어나와 기겁한 일, 창문을 열어 커튼을 접히는 순간 게코가 내 발밑에 떨어지는 끔찍한 경험 등 셀 수도 없다.그렇다 보니 쓰레기 정리, 이불 정리, 청소할 때, 심지어 문을 열 때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게코 공포증이 생겨 버렸다.
며칠 전 2층 작은방 앞에 숨어 있던 게코 한 마리를 청소 중 발견하고 사용하지 않는 창고방으로 유인해 가둬두었다. 그날 저녁,'어떻게 게코를 놓치지 않고 쉽게 잡을 것인가?'란 주제로 가족회의를 급하게 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1.5L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윗부분을 아랫부분에 뒤집어 끼우고 그 안에 채소를 두어 게코트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게코가 충분히 빠져나올 거라며 절레절레 흔든다.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본 결과 동물과 가장 프랜들리 한 큰아이와 아내가 창고방에 직접 들어가 장갑을 낀 손으로 잡든지, 잘라놓은 페트병에 가둬 밖으로 던지자는 의견으로 결정됐다.
새끼 게코를 잡기 위해 들어간 두 사람,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뿐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지나 밖으로 나오는그들 손에 빈손과 빈 통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게코가 방의 창문으로 나갔던지, 방문의 미세한 틈을 헤집고 나왔던지 둘 중 한 가지. 50%의 찝찝함을 뒤로하고 한참을 창고방을 쳐다보았다.
다음날 새벽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일어났다가 문짝에 붙어있는 게코를 보았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모습이 꼭 나와 닮았다.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뻔뻔한 녀석들. 정말로 내가 무서운 걸까? 아니면 무서운 척하는 걸까? 새로 들어온 게코인지 도망친 게코인지 알 수없지만 술래가 없어 끝나지 않을 공포의 숨바꼭질은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