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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03. 2022

방콕에서 일어난 공포의 숨바꼭질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 맛 (#11)


웬만한 창문과 문틈을 다 막았음에도 도마뱀들은 기를 쓰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어두운 저녁이 오기 전 좀비를 피해 창문의 빛을 막으려 틈을 막는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 끝에 중지 정도의 어른 도마뱀은 들어오지 못하고 새끼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새끼 도마뱀만 가끔 보인다.


이곳의 도마뱀은 몸에 비해 발이 큰 게코도마뱀 종류로 미끄러운 타일에서는 빙판길에 헛도는 자동차처럼 헤매지만, 벽에서는 스파이더 맨처럼 나는 듯 기어 다닌다. 파리채를 이용해 잡아볼까 하지만 해충과 달리 너무 잔인하다.


게코들은 꼭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레기 통을 비우려고 비닐을 빼는 순간 게코가 튀어 올라 쓰레기봉투를 공중에 던져 버린 . (흐트러진 쓰레기를 다시 담아야 하는 수고는 덤이다.)


또, 침대를 정리하다 베개를 드는 순간 숨어있던 게코가 튀어나와 기겁한 일, 창문을 열어 커튼을 접히는 순간 게코가 내 발밑에 떨어지는 끔찍한 경험 등 셀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쓰레기 정리, 이불 정리, 청소할 때, 심지어 문을 열 때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게코 공포증이 생겨 버렸다.


며칠 전 2층 작은방 앞에 숨어 있던 게코 한 마리를 청소 중 발견하고 사용하지 않는 창고방으로 유인해 가둬두었다. 그날 저녁, '어떻게 게코를 놓치지 않고 쉽게 잡을 것인가?'란 주제로 가족회의를 급하게 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1.5L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윗부분을 아랫부분에 뒤집어 끼우고 그 안에 채소를 두어 게코트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게코가 충분히 빠져나올 거라며 절레절레 흔든다.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본 결과 동물과 가장 프랜들리 한 큰아이와 아내가 창고방에 직접 들어가 장갑을 낀 손으로 잡든지, 잘라놓은 페트병에 가둬 밖으로 던지자는 의견으로 결정됐다.


새끼 게코를 잡기 위해 들어간 두 사람,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뿐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지나 밖으로 나오는 그들 손에 빈손과 빈 통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게코가 방의 창문으로 나갔던지, 방문의 미세한 틈을 헤집고 나왔던지 둘 중 한 가지. 50%의 찝찝함을 뒤로하고 한참을 창고방을 쳐다보았다.


다음날 새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일어났다가 문짝에 붙어있는 게코를 보았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모습이 꼭 나와 닮았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뻔뻔한 녀석들. 정말로 내가 무서운 걸까? 아니면  무서운 척하는 걸까? 새로 들어온 게코인지 도망친 게코인지 알 수 없지만 술래가 없어 끝나지 않을 공포의 숨바꼭질은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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