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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07. 2022

태국 방콕에서 집 떠난 아내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 맛 (#14)


아내가 집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5일간 해외인 태국에서 또 다른 해외로 출장을 간 것이다. 그것도 비행시간까지 고려하니 꽉 채운 5일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제대로 신발 속으로 들어간 상황이다.


아내가 출장 간 것을 게코도 눈치를 챈 것일까? 아내가 출장을 간 날 잠을 자기 전 화장실에서 게코를 보았다. 아마 창고방에 못 나오게 가둬 두었던 게코가 방문 틈으로 빠져나온 모양이다. 어찌 어중이떠중이들만 집에 있는 줄 알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걸까? 괘심 해 진다.


술래가 정해졌다. 혹시나 싶어 만들어 둔 게코 트랩 통을 이용해 그놈과 다시 숨바꼭질을 한다. 한참을 게코와 씨름한 결과 화장실 문틈에 숨은 녀석을 통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잡고 보니 개코도 작고 귀여운 모습이다. 통에 갇힌 게 어리둥절 한지 한참을 나를 다보고 있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보내주려니 그새 또 다른 게코가 들어올까 싶어 내일 아침에 보내주기로 하고...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이룰 수 있겠지?


작은 아이가 물을 마시러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악!'이라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 급히 내려가 보니 벽시계 뒤편으로 게코를 또 봤다며 기겁하며 되돌아 뛰어 올라온다. 아... 새로운 게코가 있었다니. 오늘 밤은 게코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로 한다.


급히 플라스틱 커피 컵을 가져다 벽시계 쪽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눈치 빠른 녀석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 않아 포기하고 올라가려는 계단 틈 그림자 사이로 교묘하게 숨어있다. 게코에게도 지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건 그때가 처음이다.


게코를 속이기 위해 못 본 척하며 계단을 올라가 녀석이 방심하고 있을 찰나 뒤에서 플라스틱 통으로 보기 좋게 잡을 수가 있었다. '도마뱀과의 수싸움에서 이겼다'는 흥분과 성취감이 교차한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오늘 포획한 게코 두 마리를 외롭지 않도록 창문가에 나란히 두고 내일 아침에 밖으로 보내 줄 생각이다. 아직 태국 사람들처럼 맨손으로 잡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게코가 무섭지 않다. 오늘 밤의 위대한 승리를 기억한다면 그 녀석들도 두 번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내가 집을 떠나니 남아있는 칠득이들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살아남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스스로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 힘들고 불편하지만 경험들을 통해 더 성장하리라. 하지만 지금은 해외에서 해외로 집 떠난 아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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