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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민작가 Aug 20. 2023

나는 혼자 살기로 했다.

③ 그녀는 정말 누구인가.

그녀가 검정고시를 바쁘게 준비해 온 이유가 있었다.





본관사또 인치엽 씨(아빠본인도 어쩌면 관종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빠는 항상 집전화를 받을 때

마다 이렇게 받으셨다. "예~ 본관사또 인치엽이유" )

나는 아빠의 슬하에 여섯 번째 딸이었고, 아빠는 여섯 번째 딸이 간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당시 노래를 

불렀었다.

(다섯째 언니도 간호사인데, 굳이 막내딸도 간호사로 일하는 걸 보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굉장히 무뚝뚝하고, 생활력 없고, 무섭고, 거의 술에 취해있고, 선인장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우리 아기가 워낙 예쁘고 귀여운 데다 외할아버지품에만 안겨있으려고 하니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을 것,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살살 녹아내렸고,

그리고 나를 서서히 용서했고, 

우리 가족을 받아들였을 때쯤.

본인의 소원을 말씀하셨다.

"막내딸이 간호복 입고 근무하는 거 보면 조~컸다"

사실 그때 간호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지금은 정말 후회되지만, 

사정상 대학을 포기하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입학해서 1년여의 과정 끝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그마한 시골 의원에서 일을 하게 됐고,

우리 아빠는 내가 사는 시골까지 버스를 타고 오셔서

내가 일하는 걸 멀찍이 지켜보곤 하셨다.

아빠는 그때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빠의 사랑은 느껴본 적 없지만,

아빠의 사랑에 만약에 색깔이 있다면..

아빠의 사랑이 내 눈에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나는 아빠의 사랑에 대한 부재를

남편에게서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부분도 있었던 거 같다.

아빠라는 사람에게서 남자라는 사람을 학습했기 때문에

우리 아빠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항상 무서운 존재였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분이었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고 있던 딸들과 많이 부딪혔었다.

남자라는 존재는 항상 크고, 무섭고, 무뚝뚝한 존재라고 학습되어 있던 나로서는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와중에도 나는 항상 사랑이 고팠다.




아빠는 아스팔트 도로를 까는 작업을 하는 인부로 일을 하셨었는데,

간혹 내가 사는 시골에 작업이 있는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전화가 왔다.

바쁘게 전화벨이 울리면 어김없이 아빠였다.

"야~ 거기 어디냐. 니네 집이랑 가깝냐. 머냐. 아빠 오늘 거기로 일 가는디?"

하시면 그냥 오라는 말씀이시다.

충청도 남자의 보고 싶다는 말이

이제 생각해 보니,

"너 바쁘니께 오지 말아~ 진짜여. 아이고 덥다"

이문장에서 보면,  "아이고 덥다" = "시원한 커피 사 와라"

아빠는 굳이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엄청 더 들어가야 하는 외곽에서 일할 때도,

둘째를 가져 배불뚝이일 때에도 항상 불러내곤 했다.

내가 시원한 수박이랑 썰어서, 미숫가루에 얼음 퐁당퐁당 넣어서 배달해 드리면,

내가 뭐라고 항상 동료들한테 

나를 자랑하시곤 했다.


보고 싶다는 말.

역시 나도 아빠에게 해본 적 없지만,

아빠는 좀 할 수 있지 않았었나. 싶기도 하다..

아빠 자식인데, 충분히 사랑에 적셔주지..


아빠는 애정표현이 정말 0.0000001도 없었지만,

아빠는 분명 나를 사랑했다고 믿는다.

왜냐면,

그 느낌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아빠의 사랑이.






에필로그


나는 1남 6녀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다.

내 동생은 3대 독자 귀한 아들이었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세 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느끼며 자라왔고, 지금도 ING.

엄마는 일곱째로 고추를 달고 나온 아들을 낳고 나서, 온 우주를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나도 내 동생이 있어서 참 좋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좋아하는 내 동생을 나도 좋아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짝사랑했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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