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추천 와인 #01
줄거리
여기 ‘교수'라 불리는 한 천재가 있다. 그는 8명의 범죄자들을 모아 금고를 털 준비를 한다. 상대는 스페인 정부. 이들은 5개월 간의 준비를 마친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돈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24억 유로(한화 약 3조 2,216억)의 돈을 찍어낼 계획이다. 인질 68명을 볼모로 붙잡으며 그들의 작전은 시작되는데...
생산지 스페인, <종이의 집>으로 반전을 꾀하다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은 스페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입니다. 역대 비영어권 시청 시간 순위 2위를 기록한 가장 대표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스페인은 사실 콘텐츠에 있어 내세울 만한 것들이 그동안 없었어요. 영화, 드라마 등에서 큰활약을 보이지 못해왔고, 전세계적으로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작품 역시 전무했죠. 그러나 <종이의 집>을 통해 스페인은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종이의 집>은 스페인을 넘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시즌 5까지 방영되며 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강렬한 맛? 한국에 막장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텔레노벨라(Telenovela)
스페인은 다양한 문화가 융성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유독 콘텐츠 시장만큼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특히 TV 산업의 경우 아주 느린 속도로 성장해 왔죠. 한 해 스페인 디지털 콘텐츠 산업 투자액 중 TV 산업은 23.5%를 차지해요. 아주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영화 부문이 59.5%인걸 생각하면 다소 차이가 크죠.
2010년부터 스페인 정부는 공영성 강화를 위해 상업 광고를 전면 폐지했어요. 대신 통신사 및 각 자치주가 ‘RTVE세금’라는 일종의 분담금을 내기 시작했죠. 그러나 장기적인 스페인 경기 침체는 결국 지속적인 예산 삭감으로 이어져 왔고 이는 결국 스페인 TV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게 되었죠.
그리고 애초에 수요 자체도 그리 높지 않았아요. 유럽의 젊은층은 원래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다고 해요. ‘트렌디하지 못하다.’라는 인식 때문인데요. 혹시 텔레노벨라(Telenovela)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텔레노벨라는 스페인 및 남미 국가에서 제작되는 일일 연속극을 뜻해요. ‘맺어질 수 없는 남녀가 난관을 극복하여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가 주가 되며 ‘사랑, 불륜, 음모, 배신' 등의 보편적 아이템을 통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방식으로 매 회가 전개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텔레노벨라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한국의 막장 드라마와 매우 유사합니다. 한국 역시 일일 연속극은 자극적인 소재의 ‘막장 드라마'가 현재까지도 대부분이죠. 대부분의 젊은층은 막장 드라마를 즐겨 보지는 않죠. 대신 한국은 ‘막장’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어 선택지가 많은 것이고, 스페인은 텔레노벨라(Telenovela)가 여전히 주를 이루다 보니 젊은층의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낮았던 것이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에게 반전의 키를 쥐게 한 것은 바로 ‘넷플릭스'의 등장이랍니다. 넷플릭스는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왔습니다. 한국 역시 최고 수준의 제작비, 제작 환경을 지원받으며 ‘오징어 게임'등의 킬러 콘텐츠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고요. 스페인은 최적의 조건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종이의 집, 엘리트들' 등 전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친 스페인 콘텐츠가 탄생되게 됩니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스페인 콘텐츠의 양적·질적 성장은 물론이고, 스페인 젊은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에도 충분했어요. 현재 스페인 OTT 부문은 전체 시청각 콘텐츠 산업의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저성장을 보이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요. 2023년까지 1,290억 유로의 규모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의 집>에서 명장면으로 뽑는 것 중 하나가 시즌 1의 마지막화에서 '교수'와 '베를린'이 함께 '벨라 챠오(Bella Ciao)'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무게감 있는 노래와 두 캐릭터의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묵직한 여운을 주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벨라 챠오(Bella Ciao)'라는 곡의 의미를 안다면 이 장면의 감동도, 이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깊어질 거예요.
벨라 챠오(Bella Ciao)는 사실 이탈리아 민중가요예요. 그러나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저항'의 의미를 담은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이 곡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북부에서 착취를 당하던 농민들에 의해 처음 불렸다고 해요. 이후 나치와 파시즘에 대항하던 이탈리아 저항군(파르티잔)에 의해 불리며, 불의에 저항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노래로 알려지게 되었죠.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밀바, 이브몽땅 등 유명 가수들이 벨라 챠오(Bella Ciao)를 부르며 이 곡은 더욱 유명해졌고, 이후 전세계 많은 반정부 시위에서 이 노래는 불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종이의 집>에서 왜 하필 벨라 챠오(Bella Ciao)를 부르는 것일까요? 이는 드라마의 핵심 주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답니다. <종이의 집>은 단순히 돈을 훔치는 도둑들의 이야기를 넘어선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정부와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죠. '종이의 집'은 조폐국을 뜻하기도 해요. 드라마에서는 일반 은행이 아닌 중앙 은행이나 조폐국이 범죄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 내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됩니다.
왜 하필 살바도르 달리 가면을 쓰는 걸까?
가면은 <종이의 집>에서 가장 큰 임팩트를 주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온 몸을 가리는 빨강색 점프수트와 가면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종이의 집>이 리메이크된다고 확정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한국판에서는 어떤 가면을 쓸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었죠. 실제로 '교수는 과연 어떤 가면을 선택하게될까?'라는 질문과 함께 한국판 첫 티저를 공개하기도 했었죠.
6월 24일 공개 예정인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종이의 집> 원작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얼굴을 한 가면을 씁니다.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 가장 크겠죠. 그러나 그 이유에서라면 눈에 띄는 강렬한 복장은 '정체를 숨기기 위한 목적'과는 조금은 상충됩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저항'이죠. 가면과 복장은 저항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다다이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다다이즘의 핵심은 '기존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만이 예찬받던 기존 문예·예술 사조를 벗어나,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중시하는 것이 초현실주의입니다. 달리의 초현실주의는 기존 논리적 이성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며, 이는 곧 달리가 추구하던 저항 정신이기도 했습니다.
자꾸만 찾게 되는 중독성 강한 첫 맛, 그리고 천천히 찾아오는 묵직한 바디감
와인 총평 '종이의 집'을 통해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강렬함'을 한껏 머금을 수 있었습니다. 텔레노벨라로 다져진 내공 덕분인지, 확실히 중독되게 하는 강렬한 한 방이 있달까요. 한 번 시작하고, 결국 밤을 새워 끝냈던 기억이 있네요. 중심을 잃지 않는 확실한 바디감이 인상 깊었어요. 사랑, 우정, 성장 등 서사적 촘촘함은 물론이고, '저항'이라는 키워드를 시즌 내내 곳곳에 잘 녹여낸 점도 인상 깊었어요.
존재감 만점! 강렬한 맛이 돋보이는 <종이의 집>에는 튀지 않는 안주가 좋겠어요. 오늘은 전체적인 밸런스 잡아줄 수 있는 담백한 올리브를 추천하려고 해요. 스페인 사람들은 실제로 간단한 안주로 올리브를 즐긴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스페인은 올리브 최대생산국이에요. 지중해성 기후를 띄는 스페인이 올리브 재배에 적합하거든요.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을 머금고 자라난 올리브!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