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밖으로 향한다.
먹고살기 위해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지만,
이런 삶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대학교 4학년.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격증도 몇 개 따고, 이력서도 성실히 써가며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딱딱하다.
“이제는 취업해야지.”
누군가의 조언처럼 들려야 할 그 말이,
이젠 내 불안을 조여 오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기업들은 신입을 뽑는다면서,
정작 그 신입에게조차 ‘경력’을 요구한다.
도대체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사람은
어디에서 그 경력을 쌓으란 말인가.
돌아봐도, 어디에도 ‘처음’을 허락하는 자리는 없다.
누구도 첫 시작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말한다.
“경력이 없으면 안 돼.”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럼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가.
뉴스에는 매일같이 ‘청년 취업난’, ‘세대 포기’, ‘절망’ 같은 단어들이 떠돈다.
어떤 이는 말했다.
“20, 30대는 이미 버려진 세대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 말이 어쩐지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더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이게 누구를 위한 개혁이고, 어떤 세대를 위한 구조인가.
청년들이 왜 길을 잃는지,
왜 점점 더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안갯속을 걸으며,
나라가 정해준 ‘가정을 꾸릴 시기’를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놓치고 있을 뿐이다.
의류 매장에 도착하자
익숙한 손길이 내 팔을 톡톡 건드렸다.
서연 언니였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알바 언니.
언니는 항상 밝아서, 같이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언니!”
“잘 지냈냐? 왜 이렇게 핼쑥해졌어? 밥은 잘 먹고 다녀?”
“뭐래~ 언니야말로... 진짜 많이 야위었어.”
반가움에 묻혀 미처 보지 못했던 언니의 얼굴은
확실히 많이 지쳐 있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 괜찮아?”
“하... 사실 어제 면접 보러 갔다가 면접관이랑 싸웠어.”
“... 뭐?”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공과 사를 누구보다 잘 구분하던 언니가, 면접관이랑 싸웠다고?
설마 농담이겠지 싶었지만, 언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뭔데...?”
“하... 얘기 길다. 들어봐.”
서연은 깔끔한 복장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정성껏 준비한 이력서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이어폰에선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가 끝날 즈음엔, 꼭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며
회사 앞에 도착했다.
‘나도 여기 다니면 인생에 좀 뽕이 차는 건가?’
장난처럼 스쳐간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약간은 설레게 했다.
이름이 불리고, 면접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다.
‘할 수 있다. 오늘은 꼭 붙자.’
면접실에 들어서자, 마주한 사람들은
마치 관문을 지키는 사또 같았다.
서연은 바른 자세로 인사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경력이 없네요? 저희는 경력직을 선호하는데요.”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익숙한 질문이었지만, 매번 아팠다.
물론 서연도 알고 있었다.
이 나이 먹도록 경력이 없다는 게 결국 자신의 책임이라는 걸.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쌓고 싶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노력했다고. 정말 간절했다고.
하지만 그런 말은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그래서 서연은 기회를 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력은 없지만, 이곳에서 제 첫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외국어도 가능하고, 책임감 있게 일할 자신 있습니다...”
조급함 속에 쏟아낸 말들.
그 속에서 자신이 마치
경매장에 나온 노예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고개 숙이고, 어떻게든 선택받기 위해 애쓰는 존재.
그게 자신답지 않다고 느낀 순간,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근데... 신입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건
좀... 부당한 거 아닌가요?”
면접실이 조용해졌다.
“서연 씨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아. 망했다.
서연의 머릿속에 후회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말이었다.
그래서 더 솔직해졌다.
“네. 사회초년생에게 경력을 요구하면서
경력을 쌓을 기회는 주지 않잖아요.”
면접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군요. 여기까지만 하죠.
저희와는 맞지 않는 것 같네요.”
면접은 끝났다.
되돌릴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홀가분했다.
적어도, 솔직했으니까. 적어도, 자신답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돌아서려는 서연에게
면접관이 마지막 말을 던졌다.
“서연 씨. 인생 선배로서 한 마디 하자면,
지금은 그게 정의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회는, 그런 정의를 외치는 사람을 배척합니다.
틀에 맞춰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정신 차리세요.”
서연은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서연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면접관이 너무했다고? 솔직히 말해, 그렇진 않다.
내 눈에도 언니가 실수한 게 맞다.
앞으로의 취업길은 더 험난해질 테니까.
그런 걸 왜 스스로 자초했을까.
맞다. 우린 결국 사회가 짜놓은 틀에 맞춰 살아간다.
그 틀이 잘못되었더라도.
우리가 목소리를 내면, 사회는 우리를 배척한다.
하지만 나는 언니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틀에 맞춰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청년을 위하는 정치인이 없는 이 나라가 미울 뿐.
그래도 배척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를 구겨 넣고 살아간다는 게 괴로울 뿐.
나도 안다. 이건 옳지 않다는 걸.
차라리 조선시대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시대의 왕은, 백성을 사랑하려는 척이라도 했으니까.
권력에 눈이 먼 사람만 가득한 지금보단,
덜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나는 종착점에 도착해
내일의 나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지혜로워질까.
계속 불평만 하고 살아가는 게,
과연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