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놓을 수 없다.

by 희망

어느덧 나는 쉰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다.
벌써 오십이라니, 세월은 참 야속하리만치 빠르다.
그럼에도 늙어가는 것이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다.
내게는 천사 같은 딸이 있으니까.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똑부러지게 살아가는 나의 아이.

장을 보고 돌아와 거실 바닥에 털썩 누웠다.
이 나이에 이 정도 체력이면 괜찮은 편이지.
휴대폰을 켜고 유튜브를 열었다.
딸이 알려준 방법이었다.
예전엔 TV 앞에 앉아야만 볼 수 있던 뉴스를,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니
이미 이 세상에 깊이 반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매력에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뉴스 피드에는 온갖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중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클릭과 동시에,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눈을 맞췄다.

> “유명 해외 유튜버, 한국은 사라질 것이라 예언.”



그 한 문장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현실을 인정하라. 이젠 포기해도 된다.
아니, 나는 이미 포기한 걸까?
그래서 그 말이 그렇게 선명히 들린 걸까?
혹시, 누군가는 그 말을 포기하지 말라는 외침으로 들었을까?

뉴스의 음성은 이어졌다.

> “한국은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사랑했던 나라는 2060년대 이후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나라,
모두가 그토록 아끼던 그 이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그건 너무도 가혹한 예언이었다.

궁금함에 나는 형편없는 타자 실력으로 원본 영상을 찾아봤다.
번역된 자막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따라가며 내용을 읽었다.
저출산, 과도한 노동, 사라져 버린 공동체의 정…
전부 맞는 말이었다.
이방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분석은
한국을 기막히게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정작 한국을 이끌어야 할 사람들은 입을 닫고 있는데,
먼 나라 유튜버가 우리를 걱정해 주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댓글도 읽어봤다.
익숙한 말투, 한국인도 있었다.

> “정확한 지적, 알려줘서 고맙다.”
“우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수없이 반복되는 체념들.
그걸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왜일까.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고민하다 마침내 알아냈다.

한국의 역사는 아름답다.
자기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사람들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살릴 수도 있었지만
‘한국’을 위해 스스로를 버렸다.
다친 다리로라도 나라를 업고 병원을 찾던 사람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밤새 고민하던 이들,
무엇도 줄 수 없을 때는 자신을 내어주던 사람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 한국은
결국 찬란한 날개를 펴며 그들에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을 사랑하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들,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사람들뿐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님은
국민 앞에 솔직했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으며,
권력보다 정의를 믿었던 분이었다.
그러나 끝내 우리는 그분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분의 시간과 희생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날 거라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무도 몰라줘도, 끝까지 나라를 사랑했다.
삶의 뿌리까지 내어줄 만큼.

하지만 나는 그분을 존경하면서도
존경하지 못한다.
나는 그만큼의 용기가 없으니까.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니까.




"띠디디딕, 철컥."

도어록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딸이다. 나의 천사 같은 아이.

> “엄마!”



그 아이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누가 저토록 순한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을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 “엄마, 우리... 돈 좀 있어?”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혹시, 돈 때문일까?

> “없지... 왜?”
“그게… 우리, 이민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순간 숨이 멎었다.
이 나라를 떠난다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는 딸을 바라보았다.
항상 옳았던 아이였다.
생각이 깊고, 결단이 분명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녀는 말했다.
친구들이 모두 이민을 준비 중이고,
그들 모두 “여긴 끝났어”라고 말한다고.

나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여기는 내가 태어난 땅이고,
한때 모두가 사랑을 쏟아 지켜낸 나라였으니까.
그래서… 여전히 여기이니까.



밤이 깊어지고,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 외면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을까?
포기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나는 죄인 같다.
지켜주지 못한 대통령,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내 딸,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 삶.
그저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함께 느껴주었으면 했는데…

하지만 내가 틀렸다.
국민연금 개혁을 다룬 뉴스가, 내 자식을 무너뜨릴 구조를 낱낱이 보여줬다.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숨 쉬는 게 아니란 걸 다시 깨달았다.

심장이 무너졌다.
터질 듯한 울분에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 “엄마! 괜찮아요?”



아, 또 그 아이다.
하지만 이젠 그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괴롭다.

> “엄마... 김여사 나 좀 봐봐! 또 이상한 생각 했지?
이번엔 뭐 때문에 우리 김여사가 울지?”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통곡했다.
참 우습다.
내가 안아줘야 할 아이인데,
이젠 그 아이의 품이 내게 안식처가 된다니.

> “엄마는... 싫다. 한국을 떠나기도,
한국이 시들어가는 걸 바라보기도 싫어.
예전엔 이웃의 정으로 버텨내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그 웃음도, 빛도, 사랑도 사라져 버렸어.
나라가 무너질 때, 나는 뭐 했을까.
보잘것없는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그녀는 말없이 등을 두드렸다.

> “엄마. 우리, 긴 여행 한번 떠나보자.
두려워하지 말고 목소리 내자.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살아보자.
목소리 내지 않고 사는 건 매일 밤 편안할지는 몰라도,
옳은 길은 아니야.
엄마도, 나도… 이 나라를 정말 사랑하잖아.
그게 맞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이렇게 큰 사람이 되었을까, 내 딸은.




한 번 사는 인생,
목소리라도 내보자.
내가 뒤쫓을 그날은 정말 와줄지 모르겠다.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존경했던 이들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그들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수많은 시도 끝에
거센 파도를 넘어 결국 도달한 곳이 있었다.

우리의 여정도 그럴 것이다.
비바람이 치고, 안개가 끼겠지만
그것이 곧 ‘여행’이라는 증거니까.



정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까?
이제 그 질문은 접어두자.
뭐라도 해보자.
그분처럼. 그분들처럼.

과거의 나는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려웠다.
사랑하기에 한국의 더 망가진 모습을 외면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겠다.

사랑으로 버텨온 나라를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
놓으라 해도 놓지 않겠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에게 기대고 싶다.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
청년과 함께 숨 쉬는 사람.

나와 같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 당신도, 한국의 고장 난 날개를 고쳐줄 수 있습니까?
목소리라도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이 망가져도, 여전히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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